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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제 9단이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에 맞서려고 세계 바둑랭킹 1위 자존심을 잠시 접어둔 모습이다.

커제 9단은 23일 중국 저장성 우전의 국제인터넷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바둑의 미래 서밋'Future of Go Summit) 3번기 1국에서 인공지능 알파고와 대국하면서 이전에 자신이 두던 스타일과는 다른 바둑을 선보이고 있다.

흑돌을 잡은 커제 9단은 우상귀 소목에 첫 돌을 놓았고 알파고가 우하귀 화점에 착수하자 좌상귀 3·3에 착수했다.

초반부터 귀를 지키는 3·3은 극단적으로 실리를 추구하는 포석이다. 발전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현대 바둑에서는 '초반에 둬서는 안 되는 수'로 불리기도 한다.

프로바둑 기사들은 커제 9단이 세계 정상급 기사로 성장한 이후로는 균형적인 바둑을 두다가 중간 이후 우위를 잡고 앞서는 스타일을 보여왔다고 말한다.

이날 알파고에 맞서 초반부터 보여준 모습은 기존 커제 9단의 모습과 다르다.

조혜연 9단은 3·3에 대해 "사람들은 절대 그렇게 안 둔다. 초반에 상대가 화점에 뒀는데 3·3을 뒀다는 것은 '주지 말아야 할 것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알파고를 상대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혜연 9단은 "알파고가 온라인 대국에서 초반 3·3을 많이 선보였다"며 "커제 9단은 알파고가 이 전략으로 이기는 모습을 많이 봤다. 본인이 3·3을 두면서 상대에게 3·3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고 분석했다.

그만큼 커제 9단이 알파고를 많이 연구했다는 의미다.

조혜연 9단은 최근 커제 9단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고 전했다. 중국 바둑리그인 갑조리그에서 패배가 많았다. 알파고 대국 준비에 집중하다 보니 나온 결과로 보인다.

조혜연 9단은 "커제 9단은 사람과의 대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알파고를 상대해야 한다고 결론 내린 듯하다"고 평가했다.

알파고의 발상은 사람의 바둑과 차원이 다르다. 지난해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처음 대국할 때 전 세계가 놀랐던 이유다.

이 점을 숙지한 커제 9단은 당황하지 않고 알파고 대응책까지 들고 나왔다.

조혜연 9단은 커제 9단의 이런 모습에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일정 수준을 넘어선 바둑 기사라면 자신만의 기풍과 색깔이 있기 마련이다. 커제 9단은 자신만의 색깔로 세계 바둑을 제패했다.

조혜연 9단은 "커제 9단은 자신의 스타일을 내려두고, 상대가 인공지능임을 인정한 상태에서 새로운 바둑을 두고 있다"며 "아마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을 지켜보고 '나만의 스타일을 고집한다고 이길 상대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