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수지구 아파트 숲 사이, 이상주의 개혁가 조광조의 심곡서원(深谷書院)이 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에도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로 2015년 경기도 유형문화재에서 국가 사적으로 승격됐다.

향교가 국립학교라면 서원은 사립학교다. 낙향한 사림파들이 만든 것으로 유학을 연구하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가운데 강당을 중심으로 양쪽에 기숙사를 두고 뒤쪽에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가 기본구조다.

훈구파 반정 공신에게 시달리던 중종. "사간원은 바른말을 하는 자리인데 아직까지 제대로 바른말을 한 자가 없으니 사헌부와 사간원 전부를 파면해야 한다"는 34세의 젊고 잘 생긴(거리에 나갈 때마다 아녀자들이 담장 밖으로 고개를 빼고 구경했다 함) 조광조를 중용한다.

이후 조광조는 향약을 만들어 향촌사회에 대한 훈구파의 수탈을 막고, 과거제에 추천제를 결합시킨 현량과를 실시해 사림세력의 중앙정치 진출을 돕는다. 특히 위훈 삭제사건으로 공신 4분의3에 해당하는 76명의 공훈을 삭제하고 토지와 노비를 환수한다.

이러한 급진적 개혁은 훈구파의 반격을 받게 되는데 이는 흔들리는 중종의 마음을 교묘히 파고든 것이었다.
대궐 후원의 나뭇가지 잎에다 꿀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고 써서 벌레가 파먹게 한 다음, 궁녀로 하여금 왕에게 바치도록 한 것. 주와 초를 합치면 조가 되니 이는 조광조가 왕이 된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본인은 사형에, 처자들은 노비로, 재산은 몰수되니 이를 기묘사화라고 한다.

조광조는 사약을 마시기 전, 자신을 한나라 왕망에 비유하자 "왕망은 사사로운 욕심을 취한 자가 아니더냐" 하면서 크게 웃고 시 한편을 남겼다. "임금을 어버이같이 사랑하고, 나라 일을 내 집 걱정하듯 하였노라. 밝고 밝은 햇빛 세상에 비치니, 거짓 없는 내 마음 환히 비추리"

혹자는 "급진적 개혁의 필연적 실패"라고 평하기도 하지만, 부당한 것을 거부하고 올바른 길을 걷고자 했던 그의 기개와 열정까지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수없이 증명해 왔기 때문이다.

/김진효 경기도 문화유산과 문화유산관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