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경제연구소장
왕의 시대에도 별로 다르지 않았지만, 선거에 의해 한 국가의 권력이 교체되는 시기의 모습은 대개 비슷하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가 거리와 골목을 가득 메우고, 용비어천가가 당시의 언로(言路)들과 매체에 넘실거리게 마련이다. 구름 위를 걸으며 들어서는 권력들의 얼굴에는 웃음과 결의가 터질 듯이 가득하다. 그래서 통상, 최고 권력들의 인기와 지지도는 임기 초에 정점을 찍는다. 처음에는 다 그렇다.

그러나 시간은 늘 우리에게 가르친다. 인간의 탐욕스럽고 호전적인 속성과 그들이 만드는 역사의 본질은 좀처럼 쉽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비록 엄청난 피의 대가를 치르고 달성한 혁명과 전쟁의 결과라고 해도 조금만 긴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보면, 역시 그러한 시간의 가르침에 예외와 차착이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게 된다.

그래서 대개 임기 말의 지도자들은 인간 집단의 희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속절없는 것인지를 입증하면서 초라하게 퇴장의 무대를 밟는다. 그렇게 또 다시 새로운 권력이 들어서게 되고. 결국, 인간들의 본래 그런 속성에 따라 권력의 쟁투는 기실 무의미하지만 쉬지 않고 이어진다.

소통하는 대통령의 함박웃음이 어떻든, 명랑한 정숙씨의 패션과 청와대 인삼정과가 어떻든, 심지어 광주의 한이 풀려나가고 검찰의 권세가 풀이 죽는 듯이 보이는 모습도 내겐 별로 새롭지가 않다. 글쎄…, 항상 바라는 건, 앞의 권력보다 좀 더 겸허하고 유능한 세력이기를 바라는 것뿐인데…, 처음엔 다 그런 거니까.
이제 곧 들뜬 모습을 만들어낸 패거리들이 무더기로 자리를 찾아 나설 것이고, 수많은 민원들이 주민 숙원이라는 이름으로 거리로, 거리로 몰려 나오지 않을지…. 국회와 정당들은 곧 또 다시 국회의원과 당장 눈앞에 닥친 지자체 공천의 계산 속으로 빠져들 것이고, 개헌과 공천을 묶는 것이 나을까 아닐까, 이념 타령까지 버무려 가면서, 계속 불구덩이 속을 헤맬 것이다.

그 속에서 구국의 개헌이 이뤄질까? 패거리 의식을 정리하지 못한 사회,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책임의 회피,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파렴치를 극복하지 못한 사회가, 과연 통합을 이루고 부패·부조리의 늪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그래서 그 중심에 있다는 대통령을 생각한다. 그들은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그들은 정말로 태어날 때부터 하늘이 점지하는 인간들일까. 그들은 정말로 한 나라에서 가장 똑똑하고 유능한, 종합적으로 최선의 인간 모델일까. 최소한 그들은 가장 인간 친화적인 인격체들일까. 그들은 정말로 세상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고, 최소한 미리 알지는 못했을지라도 그러한 답을 찾아내는 유별한 오감과 지적 능력을 갖춘 사람들일까. 그 모두가 아니라하더라도 그들은 무척 부지런하며 타고난 책임감과 멸사봉공의 인격화가 이루어져 있는 그런 사람들일까.

물론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다"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이 문제가 된다. 그런데 왜 그들은 그 자리에 가는가. 그런데 왜 우리들은 그들에게 그런 가치들을 요구하고, 심지어 내가 지지하는 그들은 마치 그런 존재인 것처럼 미화하려 하는 걸까.

문득 작은 강가에 나서서 바위에 옥쇄(玉碎)하는 물보라를 본다. 산지사방으로 물방울이 튄다. 제일 꼭대기까지 튀어 오르는 물방울이 있는가하면 곧 바로 물결 위에 흩뿌려지는 물살이 있다. 가장 높이 튀어 오르는 물방울은 그렇게 준비되어 있는 유별한, 잘난 물방울일까. 물결 속으로 곧장 휩쓸리는 물보라는 그러니까 가장 보잘 것 없는 비천한 물방울들일까. 인간사 또한 거기서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아닐까.
결국 대통령이란, 인격화한 제도, 또는 제도화한 인격인 것이고, 세상을 조직하기에 따라서는 없어도 그만인 그런 자리가 아닐까. 당사자나 소위 국민들이나 서로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야 권력의 악순환이라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가본지가 오래여서 최근의 근황을 알 수 없지만 창경궁의 춘당지 앞에서 생각에 잠겼던 기억이 있다. 그때 춘당지의 물은 몹시도 탁했다. 관리청은 무엇하고 있느냐고 여론이 끓었었다. 썩은 물을 모두 퍼내고 새물로 채우고 물고기들도 새로 풀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때 나는 물이 썩는 것은 물이 흐르는 구조를 만들어주지 않은 것이 문제이니 물이 흐르는 구조를 먼저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그 다음에 깨끗한 물을 계속 흘려 넣는다면 수선 떨지 않고 못과 고기 모두를 살릴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내 곁에 있던 누군가에게 이야기했던 기억이다.

내가 남을 적폐(積弊)로 부른다면, 그도 나를 적폐(敵斃)로 지적할 것이다. 치사한 싸움 없이 세상을 바꿀 수 있어야 유능한 선정(善政)이 아니겠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