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국 인천시선관위 행정과장
지난 제19대 대선을 불과 20여일 앞둔 4월20일, 개표부정 의혹을 소재로 만든 영화 <더 플랜>이 개봉돼 많은 이들의 불안과 의심을 부추겼다. 이제 선거는 끝났고 더 이상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개표부정 의혹 등 사회불안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도 없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는 사람들에게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호소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코끼리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고 하였다. 사람은 어떤 단어를 들으면 이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여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와 연관해 이미 짜여진 도덕적·사회적·정치적 신념의 틀인 '프레임'에 끼워 맞춰 해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프레임 전략'은 음모론자들이 사람들을 기만하는 전형적 수법이기도 하다. 그들은 음모를 부인하는 결정적 증거에 반박하기는커녕 거의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대신 일반인의 관점에서 이상하게 보이는 자료를 여럿 제시하며, 이것이 음모에 의한 것이라면 설명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사람들은 음모론자들이 제시하는 자료가 음모론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더 플랜>도 구조가 유사하다. 이렇게 '프레임'에 말려든 결과 많은 사람들이 'k값'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개표의 공정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인양 착각하게 된다. 영화는 이러한 방식으로 의혹 제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조차 그들의 주장대로 투표지분류기를 이용한 개표를 중단하거나, 개표순서를 바꾸어 수 개표 후 투표지분류기로 확인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현행 개표시스템은 정당간 논의와 합의라는 공적 절차에 따라 제정된 공직선거법에 근거하고 있다. 투표지분류기 역시 2002년 최초 도입된 이후 15년간 문제 없이 사용된 검증된 기계장치이다. 그간 투표지분류기의 조작가능성을 이유로 수십 건의 소송이 제기됐으나, 법원에서 한 건도 인정된 것이 없다. 인위적 개표 조작이 가능한 구체적인 방법이나 명확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일명 'k값'이 개표공정성을 해치는 증거인 것처럼 여론을 호도했다.

이번 제19대 대선 개표에는 공무원들뿐만 아니라 많은 일반 시민들과 개표부정의혹을 제기했던 시민단체 회원들도 개표사무원이나 참관인으로 참여했다. 특히, 모 일간지 기자 2명이 개표부정의혹을 파헤친다며 개표사무원으로 등록해 직접 만지고, 보고 들은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일간지 기자는 개표과정을 중계하듯 자세히 소개하면서 자신의 기사를 이렇게 마무리 했다. "최근 인터넷에서 의혹이 제기된, 후보자간 여백 간격이 다른 버전의 투표용지는 개표과정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개표소 통제선 밖에선 쌍안경으로 개표 과정을 지켜보는 일반 시민도 있었다. 대선이 끝날 때 마다 약방 감초처럼 나오는 개표 부정 음모론. 투표지분류기 사전 점검 절차 공개 등 투명한 개표과정, 매 단계 시민 감시가 철저한 현장상황을 감안하면 개표 과정에 부정 개입 소지는 없어 보였다."

투표지분류기와 관련한 개표부정 의혹 제기가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논쟁과 불신을 키워 이를 해소하기 위한 국가기관의 많은 노력과 시간, 비용이 들었다. 선거가 잘 끝났다고 이대로 잊어버릴 것인가.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앞으로 또 있을지 모르는 음모론에 대해 항상 경계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