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바섬에 유배되었던 나폴레옹이 탈출하자 당시 프랑스 최대 일간지였던 <르 모니뙤르 유니베르셀>은 "식인귀 엘바섬을 탈출하다"라고 보도했다가 나폴레옹이 군대를 이끌고 파리로 입성하자 그간의 입장을 바꿔 "황제 폐하의 귀환"을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비록 이 일화가 모두 역사적 진실은 아니지만, 미디어와 권력의 굴절된 관계에 대한 상징으로 오랫동안 전해진 것은 그럴만한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일 대통령 선거가 종료되고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자신의 '게시물을 삭제해 달라'는 게시물이 1분 단위로 폭주했고,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비난발언을 했다가 명예훼손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소·고발당한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에 대한 검찰조사가 시작되었다.

그간 역사학계는 물론 교육계에서도 반대해왔던 국정역사교과서가 폐지되었는가하면 노동계는 물론 지역사회에서 문제제기를 해왔으나 꿈쩍하지 않았던 인천공항공사가 비정규직 노동자 1만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동안 국민여론은 물론 시대정신에도 역행했던 정책들이 바로잡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과정을 바라보는 입맛이 씁쓸하다. 이처럼 쉽게 될 일들이 그간 안 되었던 것도 문제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런 변화가 단지 정권교체기마다 일어나는 새로운 권력에 대한 줄서기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런 변화가 지난 정권의 실패와 국정농단을 '바로잡기(矯正)'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권력게임에서 패배한 결과로 인식될까 걱정이다.

이른바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이중잣대는 불신과 혐오만 가중시킬 수 있다. 다행히 신임 민정수석으로 임명된 조국 전 서울대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과거의 민정수석처럼 검찰의 수사 지휘에 관여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단호하게 "민정수석은 수사 지휘를 해선 안 됩니다"라고 평소 소신을 밝혔다. 원칙이 무너진 사회의 신뢰를 다시 세우는 중요한 첫 걸음이다.

/황해문화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