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동 백제호텔 커피숍 - 문계봉

오래전 당신은 자주 나를 찾았다. 헝클어진 머리, 무뎌진 바지주름, 구겨진 은하수 담배, 세련된 디자인의 성냥갑과 함께. 비 내리거나 눈 내리거나 혹은 자유공원을 배회하던 심심한 바람이 월미도 쪽으로 방향을 틀고 흐르다 문득 거리에서 만난 당신의 무른 감성, 그 숭숭 뚫린 빈틈을 헤집고 들어올 때, 그때 당신은 어김없이 나를 찾았지. 항상 당신보다 늦게 나타나던 올림포스 관광호텔 카지노 딜러, 당신의 애인에게서 풍겨오던 알싸한 샴푸 냄새, 그녀를 기다리며 종이 위에 무언가를 끄적거리던 당신의 표정, 떨림, 숨소리, 간혹 내쉬는 한숨…. 기억한다. 어느 봄날, 당신의 손끝에서 오래 머물던, 여느 때보다 많았던 메모지들. 갑자기 날카로운 미늘이 되어 당신의 마음을 낚아채던, 그 종이 위의 자음과 모음들. 한참을 앉아 있다 비틀, 일어서며 길게 내쉬던 한숨, 떨림, 무언가 결심한 듯한 당신의 마지막 표정, 기억한다. 신포동 백제호텔 커피숍, 커튼이 드리워진 창가 테이블, 카운터를 등진 안쪽 첫 번째 의자였던 나는.

▶문계봉 : 1995년 계간 <실천문학> 여름호로 등단, 현재 한국작가회의 인천지회장. 인천민예총 상임이사 및 편집주간.


이 시의 화자는 '의자'이다. 이 '의자'는 한 남자에 대해 오래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헝클어진 머리며 무뎌진 바지주름, 구겨진 은하수 담배는 물론이고, "어느 봄날" 애인을 기다리며 끄적거리던 "표정, 떨림, 숨소리, 간혹 내쉬는 한숨…."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의자'가 기억을 한다고? 그렇다. 사실, 이 시에서 의자는 "백제호텔 커피숍", "커튼이 드리워진 창가 테이블, 카운트를 등진 안쪽 첫 번째 의자"에 자주 앉아 있던 '사람'이다. 그 사람은 애인을 기다리는 그 남자이며, 다름 아닌 시인 자신이다. 그러니까 이 시는, 시인의 '기억' 속에 내재되어 있는 생생한 '감각들'을 통해 '인천의 풍경'과 '정서'(한숨, 떨림)를 미학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아마도 시인은, 자유공원을 배회할 때마다, 심심한 바람이 자신의 무른 감성에 구멍을 숭숭 뚫으며 빈틈을 헤집고 들어올 때마다, 그 당시의 인천 풍경과 그에 얽힌 기억들을 떠올릴 것이다. 어느 순간 내 빈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아련한 감각들이 그 당시 기억을 그대로 소환한다. 그 감각들이 만들어 내는 인천이라는 공간, 자유공원, 월미도, 백제호텔 커피숍, 그리고 그녀를 통해 떠올리게 되는 올림포스 관광호텔. 우리는 이 시에서 시인의 기억과 감각들을 통해 인천이 지나왔을 시간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강동우 문학평론가·가톨릭관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