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효 경기도 문화유산관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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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

행주산성에는 대첩비가 세 개 있다.

정상에 우뚝 솟은 것은 1963년에 건립된 것으로, 앞면에 '행정대첩비'란 글씨가 써 있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것이다.

또 하나는 조금 아래 있는데, 병사들이 권율장군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구비(舊碑)라 한다. 한석봉이 썼으나, 마모가 심해 거의 알아볼 수 없다.

세번째 대첩비는 행주산성 충장사에 있었는데 현재는 행주서원 기공사로 옮겨져 있다.

조선 헌종때 더 큰 규모로 비를 세우고 비문을 그대로 옮겨 쓴 것으로, 중건비라 부른다.

구비, 중건비 둘 다 경기도 유형문화재이다.

행주대첩은 한산대첩,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린다.

서울을 되찾으려던 권율장군과 퇴각을 결정한 왜군은 행주산성에서 마주치게 된다.

왜군은 3만명에 달하지만 성 안 병사는 4000여명에 부로가해 8대 1의 절대 불리한 싸움이었다.

흙을 쌓아 조총을 막고, 한 번에 600발을 발사하는 비밀병기 화차의 도움으로 12시간의 혈전을 치르지만 왜군의 마지막 9번째 공격 때에는 화살마저 떨어지게 된다.

긴 치마를 잘라 돌을 건네주는 부녀자의 도움을 받으며 사투를 벌이던 절체절명의 순간, 기적처럼 경기수사 이빈이 화살 수만개를 싣고 적의 후방으로 들어왔고, 당황한 적을 물리쳐 대승을 거두게 된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만든 결과이다"란 말이 있다.

지금 우리가 행주산성에 올라 전망 좋은 한강을 내려다 볼 수 있음은, 400년 전 바로 이곳에서 밀려오는 왜적을 온 몸으로 막아냈던 선조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얼마 전 행주산성에서 삼국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석성이 발견됐다고 한다.

조선시대 이전 자료가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소중한 고증자료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으로, 행주산성에 대한 학술조사와 종합정비계획 수립이 한창이다.

부디 사적 제56호 행주산성이 역사 교육과 유적 관광지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종철기자 jc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