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지배구조 바꾸고 공정경쟁 사회 만들어야"
▲ 인하대 김진방 교수가 재벌개혁을 위한 정책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생명평화기독연대가 11일 개최한 강연회 참석자들이 인하대 김진방 교수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적은 지분 지배 … 사회전반 영향력

일감 몰아주기 등 공정 경쟁 훼손

편법·불법 승계 방지 등 개선 절실

중도 진보성향의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보수정권 집권 9년만의 일이다. 지난 박근혜 정권 기간 중 재벌의 폐해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정경유착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경제민주화는 새 정부가 해결해야 할 최대의 화두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기간 중 "재벌개혁이 진정한 시장경제로 가는 길"이라고 강조해왔다. 새 정부가 재벌개혁에 성공하기 위해 헤쳐가야 할 핵심과제는 무엇인가? 우리나라 재벌연구의 권위자인 인하대 경제학과 김진방 교수로부터 그 해답을 찾아본다.

생명평화기독연대는 지난 11일 오후 부평아트센터에서 '경제개혁, 재벌개혁' 강연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생명평화포럼 3번째 개혁시리즈로 진행됐다.

강연에 나선 인하대 김진방 교수는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김 교수는 먼저 재벌에 대한 규정과 김대중 정부 이후 진행된 개혁정책의 문제점을 진단했다. 이어 재벌의 폐해를 구체적 사례별로 지적한 뒤, 현 정부의 재벌개혁 과제를 제시했다.

◆재벌에 대한 규정 및 실태
김 교수는 재벌체제의 문제를 ▲경제력 집중 ▲소유 지배 괴리와 대리인 문제 ▲지배력 세습 등 세 가지로 요약했다.

-경제력 집중을 넘어 사회전반에 영향력 행사
김 교수가 가장 심각한 폐해로 지목하는 것은 경제력 집중이다. 소수 개인이 경제를 지배하고, 이를 통해 사회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의 효율과 안정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재벌은 언론이나 학계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광고시장의 60~70%를 지배하는 4대 재벌이 광고를 끊어버리면 언론사는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말을 잘 듣는 학교나 교수들에게 사외이사나 연구 과제를 준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에도 그 힘을 활용한다.

-적은 지분으로 많은 대기업을 지배
이들은 5%에서 15% 가량의 지분을 가지고도 수십 개의 대기업을 지배한다. 4대 재벌의 경우, 총수와 가족, 계열사 지분을 모두를 합쳐도 대부분 10%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행사하는 의결권은 40~50%에 이른다. 자신의 보유지분에 비해 4~5배의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총수 일가의 이익이다. 기업에게 손해가 나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먼저다. 회사의 재산을 빼돌려서 자기의 손에 넣거나, 그 지배력을 자녀들에게 넘겨준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사례
김 교수는 지난 정부가 실패한 재벌정책 중 지주회사 제도 부활을 가장 먼저 지적한다. 재벌은 이를 이용해 손쉽게 지배력을 확대해 왔다.

-지주회사제도 이용 사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기업이 SK라고 소개했다. 당초 SK총수의 지분은 최대 주주인 SK C&C(11.16%)와 친인척 지분을 모두 합쳐 12.17%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주회사를 만들면서 돈 한 푼도 안 들이고 지분율을 27.7%로 끌어 올렸다.
자사주 매입과 인적분할, 지주회사 신주 발행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지분이 두 배 이상 늘어났다는 것이다. 한진중공업 홀딩스와 한진해운 홀딩스, CJ㈜, ㈜코오롱, KISCO홀딩스 등도 이같은 방법으로 지분율을 평균 2.32배 늘였다.

-재벌의 빼돌리기 사례
사내 사업을 이용해 수익을 취하는 대표적 사례로는 현대글로비스를 예로 들었다. 이 기업은 2001년~2002년 사이에 50억원을 출자해 설립했다. 이후 현대차 등의 물류업무를 넘겨받아 기업의 규모를 키웠다. 김 교수는 "총수 부자가 글로비스를 통해 2010년 말까지 실현하거나 보유한 이득이 3조원을 넘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삼성, SK, 한화, GS, 롯데, LG, 한진 등도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김 교수는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자사주를 악용하거나 빼돌리기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벌 개혁 방향과 실현 방안
김 교수는 재벌의 폐해를 막기 위한 개혁과제로 ▲경제력 집중 억제 ▲편법·불법 승계 방지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을 제시했다.

그는"개벌 개혁은 재벌체제의 세 문제를 해소하는 동시에 재벌기업을 더 잘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중 경제력 집중을 억제를 위해서는 ▲순환출자의 금지 ▲자사주 제한 ▲지주회사 규제 ▲일감 몰아주기·회사기회유용 근절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 개정·제도개선을 통한 기업지배구조 개선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사의 책임 강화 ▲사외이사, 감사위원 선임 방식 개선 등을 강조했다. 현행 상법의 개정을 통해 이사회의 책임을 구체화·세분화해 충실의 의무를 강제하자는 입장이다. 사외이사 선임에는 지배주주가 개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일반주주들이 사외이사 한 명 정도는 선임할 수 있도록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집중투표제 및 전자투표제 의무화 ▲주주대표소송 ▲집단소송 ▲손해배상 도입 등도 시급하다는 견해다.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들이 한 사람에게 표를 몰아줘 선임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현행법으로도 가능한 제도지만, 재벌들이 정관을 개정해 이를 가로 막고 있다며 이를 강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면 일반 주주들의 투표 참여가 쉬워져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재벌의 절대적 지배 억제가 핵심과제
김 교수는 "이런 제도가 시행되면 적은 지분으로 기업을 지배하며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는 것을 어느 정도는 규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면서 "집중된 경제력이 민주주의를 훼손하지 않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글·사진 정찬흥 기자 report61@incheonilbo.com


김진방 교수 프로필

▶약력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미국 듀크대학교 경제학 박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조교수 ·인하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위원장.

▶주요 저서 및 연구업적
<미국자본주의 해부> <유럽자본주의 해부> <위기 이후 한국자본주의(공저)> <한국 경제의 개혁과 갈등(공저)> <재벌의 소유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