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옥 경제부장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첫 외부 일정으로 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을 찾았다.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 공항 종사 근로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눈높이를 맞추며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0)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정일영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은 "연내 공항에 종사 중인 비정규직 근로자 1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보고했다.

그 동안의 설움과 회한이 폭발한 것일까. 눈물을 흘리는 근로자도 있었고, 박수 치며 환호하는 근로자들의 모습도 화면을 통해 국민들에게 전파됐다. 취임 후 1호 업무지시로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구성을 시달하고, 집무실에 임기 내내 일자리 현황판을 설치해 놓고 일자리 창출과 실업 해결에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한 문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 순간이었다.

인천공항공사는 14일 정 사장이 직접 팀장을 맡아 진두지휘하는 '좋은 일자리 창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가동하겠다며 발빠르게 후속 조처를 내놨다. 반면 12년 연속 세계 공항 서비스 평가 1위, 연간 5700만 명의 승객과 270만t의 화물을 처리하는 동북아 허브공항이란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인천공항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인천공항 종사자 가운데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6831명(2016년 10월 기준)으로 전체 종사자의 84.2%를 차지한다. 이들 비정규직 근로자는 경비, 보안검색, 소방, 항공등화, 건축, 토목, 수하물 처리, 공항 운영, 환경미화 등 온갖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간접고용 형태의 비정규직 신분인 탓에 온갖 차별대우를 감수해야 한다는 상대적 박탈감 속에 근무해온 게 사실이다. 근로의욕 향상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그런데 새 대통령 취임에 발맞춰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인천공항공사가 '비정규직 추방'을 공언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16년 동안 꾸준히 공항 업무를 아웃소싱하고 비정규직 근로자를 양산해온 과거엔 공항 종사자의 정규직화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경영방침 전환에 주저했었던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의지의 문제였는지, 아니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이제 비로소 경영 여건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내린 결단인지가 궁금하다. 이에 대한 객관적 판단은 차차 구체화될 인천공항공사 TF팀의 활동 결과를 통해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인천공항공사가 시동을 건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해소 정책은 환영할 일이다.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국정목표로 제시한 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기도 한 만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전체로 확산될 게 틀림 없어 보인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해소 정책의 배경엔 '양질의 일자리' 확보가 절실하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 만들기에 정부가 솔선하다는 모습을 실천함으로써 장차 민간부문으로까지 확산되는 사회적 합의 분위기를 이끌자는 정책적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서 고민이 생긴다.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없애기가 곧장 민간부문의 비정규직 없애기로 확산될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민간부문의 비정규직 해소를 강제할 수단을 갖고 있는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는 것만으로 모든 국민이 행복해지고 평등해질 수 있을까….

문 대통령의 경제참모이자 국내 대표적 재벌개혁론자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재벌개혁과 관련해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졌다. 김 교수는 "성장 둔화와 재벌 내 양극화로 개혁의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정부의 사전규제보다 시장의 힘을 키우는 게 효율적이다"고 말했다. 그는 재벌개혁 이슈 가운데 경제력 집중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제각각 나눠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천에서도 비정규직 문제 해소를 위한 지자체 차원의 시도가 전개돼 왔다. 인천시의 경우 송영길 시장 재임 때인 2011년 전국 시·도 가운데 최초로 공공부문 근로자 고용안정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인천교통공사를 비롯 시 산하 출자출연기관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근로자 1131명에 대한 정규직화를 꾸준히 추진해 왔다.
유정복 시장 취임 이후에도 이런 노력은 계승됐으며, 최근엔 시 조직개편을 통해 일자리경제국을 신설하는 등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정책으로 펼치는 중이다. 문제는 아쉽게도 공공부문의 정규직화 움직임을 민간부문이 곧바로 차용해 확대 재생산시킬 것이라는 기대가 허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강요할 방도 역시 마땅치 않다.

결국 근본 해결책은 현존 기업들의 기업활동이 활발해져 더 많은 매출과 수익을 창출하고 신생 기업들이 우후죽순 창업되는 여건을 만드는 데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불구, '사람 고용'을 통해 더욱 창의적이고 다양한 업무가 이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기업이 갖도록 정책적 수단을 강구하는 데 정부와 지자체는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번 주는 중소기업주간이다. 많은 중소벤처기업이 탄생해 인재와 기술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산업생태계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