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사업 첫 철거대상 … 15일 마지막 영업
▲ 십정2지구 재개발 사업으로 가장 먼저 철거되는 인천 부평구 십정동 열우물 목욕탕. 32년 된 이 목욕탕은 오는 15일에 마지막 손님을 받는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서울아시안게임 준비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1986년 9월. 당시 인천직할시 부평구 십정1동 293의 5에 열우물 목욕탕이 문을 열었다. 만석동과 함께 인천 대표 달동네로 꼽히던 동네에 당시로는 드물게 4층짜리 반듯한 대중목욕탕이었다.

서울을 빼면 인근에서 가장 크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20년도 더 된 얘기지만 지역 업계에선 최초로 수건을 무료로 제공하고, 탈의실 한쪽에 헬스기구까지 마련하면서 나름 이름을 날렸다.

이제 이 목욕탕도 우리 나이로 치면 올해 32살이다. 3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열우물 목욕탕은 오는 15일 마지막 손님을 받는다.

십정2구역 재개발을 위한 철거 작업을 앞두고 첫 번째 대상지로 목욕탕 건물이 이름을 올렸다. 열우물 목욕탕은 곧 있으면 고층 아파트 숲으로 변할 십정동과 가장 먼저 작별한다.

1일 점심이 다 된 시각, 앞으로 딱 2주 뒤면 폐업하는 신세와는 상관없이 목욕탕은 성업 중이었다. 남탕 안에는 10명 정도 되는 남성들이 검정 고무줄로 엮은 키를 손목에 차고, 자신의 방식대로 몸을 닦고 있었다.

"등을 밀어주겠다"는 제안에 흔쾌히 본인 때수건을 내민 김정석(76)씨는 "주말이면 손 붙잡고 왔던 꼬맹이 손자가 이젠 30대 중반에 자식도 낳았다"며 "십정동 주민들은 여기서 발가벗고 만나 이야기 꽃도 피우고 구수한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목욕탕은 평일엔 노동자, 주말엔 가족들 차지였다. 특히 목욕탕 근처 동암역 일대는 인력사무소와 부평 5공단이 한창 번창하던 시절이다. 퇴근 시간인 평일 오후 5~6시만 되면 목욕탕 바닥이 물에 씻긴 쇳가루, 흙먼지로 뿌옇게 변할 정도였다고 한다.

일용직 노동자라고 밝힌 40대 남성은 "젊을 때 저녁에 데이트 있거나 술 한잔하려면 일단 씻어야 하는데, 공장이나 막노동 현장엔 세수할 곳도 마땅치 않으니 일신동 공장 직원들도 여기까지 내려와 씻고 그랬다"며 "이젠 다 추억이다"라고 전했다.

열우물 목욕탕을 운영하는 이찬구(72) 대표는 "성인 요금이 950원에서 6000원이 될 동안 꾸준히 목욕탕을 사랑해 준 십정동 주민들에게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다"며 "목욕탕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지만, 동네 모두가 힘들었던 그때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씻을 수 있게 도움이 됐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김원진 기자 kwj799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