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예술의 참스승 '회고전' 열다
▲ '아이들을 위한 기념비2'
▲ 송덕빈 원로작가는 대한민국에서 도조를 가장 먼저 시작한 도조 1세대다. 송 원로작가가 자신의 삶과 예술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흙으로 인체표현' 팔십 넘어 전시회
인천서 미술교사 … 솔선수범 참교육
도록 등 제자들이 모든 준비 도와줘


여기, 미술을 '육화'해 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 있다. 송덕빈(84) 원로작가. 그는 우리나라 도조(도자기 조각) 1세대다. 남들이 흙으로 도자기를 만들 때 그는 흙으로 형상을 빚었다. 흙은 도자기를 굽는 재료다란 생각이 상식이던 시대였다. 그런데 그에겐 흙이 도자기가 아니라 사람으로 보였다. 그 때 부터, 그는 흙으로 사람을 빚어내기 시작했다.

인천남중고, 제물포여중, 산곡여중 등 인천에서 평생 미술교사를 하며 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그가 현장을 떠난 지 20년 만에 '회고전'을 갖는다. 오는 10~21일 인천 아트플랫폼에서 갖는 전시에서 송 작가는 평생 자신이 아껴온 작품 77점을 선보인다. 앞서 3~9일 서울 선화랑에서 프리뷰전을 갖는 송 원로작가를 만났다.
"솔직히 꿈만 같습니다. 제자들에게 가볍게 개인전 하겠다고 얘기한 게 일이 커졌어요. 잘 얘기한 것 같기도 하고, 잘 못 얘기한 것 같기도 하고…."

송덕빈이 교사로 재직한 1961~1996년 그에게 무수한 제자들이 공부를 했다.

철부지 중고생들이던 그 제자들은 지금 초로의 노인이 됐다. 그 제자들이 선생님이 "개인전 할 것이다"란 말에 발을 벗고 나섰다. 도록을 만들고, 전시회장을 마련하는 등 이번 전시의 준비와 진행은 모두 제자들이 진행했다. 송덕빈의 제자들은 우리나라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들로, 조각계 거장이나 대학교수들로 맹활약 중이다.

그 제자들에 대해 송덕빈은 "제자들하고 같이 늙어가는 처지예요. 청출어람이라고 성장한 제자들도 많지요.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충남 논산 출생인 송 작가는 1961년 인천남중고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 96년까지 35년 간 교육자의 길을 걸어왔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이 뛰어났지만 당시는 미술을 할 만한 시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48년 이후 독야청청 미술에 깊이 천착해왔다.

정규 대학을 졸업한 뒤 미술교사를 하면서도, 야간대학을 다니며 독자적인 미술공부를 계속하는 등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에 깊이 들어간 것이다. 그를 기억하는 제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은 단순히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쳐 주시거나 미술이론을 알려주시지 않았어요. 어린 학생들이지만 저희에게 예술이 무엇인가, 예술은 왜 중요한가 그런 것들을 솔선수범해서 보여주셨죠. 이를테면 어느 여름날 수업시간에 갑자기 들어오시더니 모기가 앵앵거리는 것을 보시고 '저거 바이올린 소리 같지 않아?'라고 말씀하신다든지, 카프카의 <변신>에 대한 감상평을 얘기해 주신다든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제자들의 말처럼 송덕빈은 '예술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교육했다.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이다.

이에 대해 송덕빈은 자신의 제자들을 "전설적인 제자들"이라며 한껏 치켜세운다.

"제가 가르친 제자들은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알더라구요. 스승으로서 고마울 따름이지요."

그의 작품은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인체표현이 대부분이다. 옷을 입고 있어도 인체의 원초적인 모습을 빚어내는 그의 작품은 한국인의 인간적 면모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의 작품엔 어머니가 자주 등장한다.

"어머니가 11남매를 낳고 키우셨는데, 그 애를 쓰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자신의 작품에 많이 담아냈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11남매를 낳아 기른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그 예술작품의 영원한 모티프이기도 하다.

"내 작품 속의 어머니는 고개를 떨군 어머니예요. 처참하다 못해 처연한 어머니의 삶 그 자체입니다."

80 중순에 평생을 정리하는 회고전을 갖는 원로 작가의 안경너머로 황해와 같은 물결이 출렁였다.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



[송덕빈 작품 논평] 토속적 요소 바탕 … 독창적 상징체계 구축

송덕빈의 도조 작품은 상당히 일견 이국적인 정취를 가지고 있다. 피카소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흑인조각 영향이다. 그는 피카소의 방법을 기하학적 영향으로 수용해서 한국인의 얼굴과 몸을 만들었다. 사람의 얼굴과 몸을 면과 선의 요소로 분해해서 재결합하는 방식이 그의 작품 창작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특징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이국성 자체에 함몰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들은 이국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속에 토속성을 담고 있다. 피카소의 조각이 아프리카 조각의 영향을 받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피카소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송덕빈의 작품도 그것과 무관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조각은 한국 사람의 틀을 벗어날 수다. 그의 작품에는 그가 만나온 한국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송덕빈의 인체 표현은 한국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한 정서적 공감대를 제공한다. 이 점에 대해 그는 '꾸밈을 적게 하려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술회한다. 발가벗은 그대로의 인간미를 표현하고 하고, 옷을 입고 있어도 인체의 원초적인 모습을 드려내는 그의 작품은 말 그대로 한국인의 인간적인 면모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얼굴 표현에 있어서도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상징적인 표현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의 작품은 재현에서 표현으로 진화했으며, 나아가 그 표현적 요소를 상징화해 한 예술가의 독창적인 상징체계를 구축했다. 가령 눈의 표현을 보자면, 다양한 표정을 지닌 눈을 핵심적인 요소로 압축하여 상징화 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의 눈 표현은 대체로 눈을 감고 있거나 눈의 위치만 알 수 있게 함으로써, 사랑과 슬픔의 양가적 감정을 함께 담아내고 있다. 콧날도 높이 세우지 않고 구멍만 만들어 놓아서 친밀감을 높여놓고 있다.

서양문명에 기반을 둔 조각들, 가령 그리스 로마 등에서 나온 조각들은 사실적인 재현에 충실한 것들인데, 이렇듯 사실적인 문화적 바탕 위에서 미술이 발전했지만, 재현을 넘어선 표현이야말로 현대미술을 성립가능하게 한 핵심 개념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해볼 때, 송덕빈이 채택한 재현 너머의 표현은 매우 중요한 이정표이며, 나아가 표현 이후의 상징으로의 진화 과정은 그의 예술을 완성한 핵심 요소이다. 현대미술의 감동 포인트는 사실적 재현이 아니라 예술가 고유의 스타일에 기반을 둔 상징언어의 힘에 있다는 것을 그는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생활정서에 바탕을 둔 토속적이고 자연스러운 작품 세계로 그는 재현 너머의 표현을 이루고, 다시 그 속에서 자신의 독창적인 상징세계를 만들어냈다.

/김준기 미술평론가·제주도립미술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