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효 경기도 문화유산관리팀장
▲ 남한산성 정상에 위치한 수어장대.

남한산성 정상에 위치한 수어장대. 장수가 지휘하던 곳이다. 축조 당시(인조 2년) 단층으로 축조되고, 서장대라 불리었으나 후대의 영조는 2층 누각을 올리고 외부를 수어장대, 내부는 무망루(無忘樓)라 이름 지었다. 인조의 굴욕과 효종의 못다 이룬 꿈, 북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인조는 동생 능창군이 역모로 죽임을 당하고 이로 인해 아버지마저 화병으로 죽게 되자, 반정을 직접 주도해 왕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인조는 평소 분위기가 매우 무겁고 말이 없어 신하들의 상소문에 대한 대답도 내시에게 쓰게 했다. 국제정세도 오판해 병자호란을 맞게 된다.

청의 선봉부대에 강화도 피난길이 막히자 어쩔 수 없이 남한산성으로 이동하게 된 인조. 45일간의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다 남한산성 서문을 나와 삼전도에서 삼배구고(三拜九叩,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림)의 굴욕을 겪게 된다.

한편 형 소현세자가 급서하자 8년간의 볼모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효종은 31세의 나이에 인조의 뒤를 이어 왕에 오르게 된다. 송시열과 함께 북벌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군사를 키우고 군량미도 모았지만 정작 신하와 백성과는 뜻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았던 효종. 출병을 하루 앞두고, 귀 밑에 종기를 치료하기 위한 침을 맞다가 몇 말의 피를 흘리고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된다.

10년간 북벌의 꿈을 키웠건만 '이미 강해진 청을 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신하와 '배고파 죽겠는데 전쟁은 할 수 없다'는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효종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느 유명 작가는 그의 소설에서 당시 남한산성의 참혹함과 치열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갈 수 없는 길과 가야하는 길은 포개져 있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미·중·일, 북한과의 복잡한 외교 관계 사이에서 고민하는 현재의 우리에게 무망루(無忘樓)는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김진효 경기도 문화유산관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