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명예교수
탄핵 정국은 국가와 민족에게 심각한 상처와 많은 과제를 남겼다. 문제는 어떤 메시지를 읽고 교훈을 받아야 하는지가 우리 모두의 핵심 과제다.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자.

(1) "…민심이 흔들리고 사회도 불안하며 경제는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모두 제자리를 잃고 허둥대고 온 나라가 마치 폭풍 속에 조각배처럼 흔들리고 있다(1997. 2.5. J일보 사설). "급기야 국민소득 600달러인 중국에까지 '돈을 빌려 달라'고 손을 벌리는 신세"(Mahathir, 1998.1), "금융위기로 아수라장이 된 나라, 한국에서는 아무 일도 되는 일이 없다"(독일 Die Zeit, 1998. 1), "깡통을 들고 IMF 문 앞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구걸자"(TIME, 1998), "추락하고 침몰하는 한국"(Business Week, 1998).

(2) 'DJ정권 악몽의 레임덕! 광주 민심까지 철수한다'는 잡지 표지. "잇단 권력형 비리 의혹과 심각한 경제위기, DJ정권이 파산직전의 상태로 몰렸다."(한겨레 21, 2000. 12. 7). 그 후, '낙제생 DJ! 100대 국정과제 전문가 69명의 평가 보고서'가 발표됐다. 정권 출범한지 3년 3개월이 된 시점이다. "평가 결과는 7점 척도로 전체 평점 3,6점(100점 만점으로 45,5점)이다. 가장 높은 점수는 통일분야인데 5,0점('조금 잘함' 수준)이었고, 대부분이 '가' '양' '미'의 치욕적 평가를 받았다"(한겨레 21, 2001. 6. 14). 이어서 '아버지 DJ의 비극'(제목), 대통령의 참담한 얼굴밑에 깨진 항아리 속에서 환담하는 세 아들 모습(한겨레21, 2002. 5. 9).

위 (1)의 경우는 집권 4년차에 위기를 맞은 YS정부, (2)는 집권 3년차에 중대위기를 맞은 DJ정부의 얘기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2년차에 총체적 위기를 맞았고, MB정부는 집권 3개월 때 '광우병 촛불집회가 시작(2008. 5. 2), 100일 이상 지속돼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이번의 박근혜 정부 역시 3년 8개월만에 위기를 맞아 탄핵·구속까지 됐다. 이 불행한 후진국형 한국 정치 현상을 보는 관점은 다양하겠지만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역사로부터 제대로의 교훈, 토론을 통해 지혜를 모으려는 자세, 사회변화의 흐름을 읽는 안목 등이 부족하다. 거듭되는 비극적 정치에서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 연상되는 결정적 이유다.

증오감과 적개심의 상처를 가진 햄릿, 사람을 보는 안목에 문제가 있는 오셀로, 사악한 인간이 권력욕에 빠져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에드먼드, 남을 파멸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간계(奸計)를 실천하는 모사꾼 이아고, 귓가에 달콤한 탐욕의 속삭임을 불어넣어 불의와 파멸의 길로 유도하는 탐욕의 화신 레이디맥베스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둘째, 촛불과 태극기로 뭉친 광장의 함성은 '제발 품위 좀 지키고 본분에 충실하며, 정치의 틀을 바꾸라'는 메시지이다.
50년 전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Rowan, 1966)는 조롱에서부터 "한국의 민주주의는 포니 수준"(미국인들의 시각, 강효상, 1991), "정치, '4류' 표현조차 과분하다"(정용석, 문화일보, 1998), "3류의 한국 정치"(한경BUSINESS, 2014)라는 비판에 이르기까지 나아진 게 없다. 오히려 정치인의 자질과 정치문화, 정치 효율성은 낮아졌다는 여론이 대세다. 5년을 주기로 정권의 실패를 위해 서로 정쟁을 일삼는다면 국가는 언제 발전하는가.
셋째, 박근혜 대통령의 위기는 우려·예견되었던 사태다.

북한의 대남 공작을 비롯해서 언제든 달겨들 준비가 된 적대세력이 많은데도 계속 지지세력들을 해체·와해시키는 현상이 지속됐다. 부친 때부터의 적대 세력 등 태생적 적이 많다. "단순한 정책 이견자나 반대자가 아니라 '원수'같은 증오세력, 그리고 좌파 특히 친북세력을 차단하려는데 반발하는 이념세력, 증오와 원한에 찬 적대자들"(김대중, 2015)이 그들이다.

분노세력들이 너무 많다. 노사모, 법외 노조화된 전교조, 해산된 통진당, 국정 교과서 추진에 따른 역사학자, 40%에 해당하는 취업준비생과 실업 청년들, 김영란법의 역풍을 맞은 농수산물·화훼산업종사자와 국민들, 구조조정 반대하는 노조, 개성공단업체, 세월호 참사 가족, 정권의 실패를 통해 정권을 쟁취하려는 야권 등 정치세력. 여기에 최순실 사건은 배신감·당혹감이라는 '방아쇠 생각'으로 작용했고, 결국 기폭장치(국민적 분노감)에 점화되어 분노로 표출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변해야 한다. 정파의 이익과 당리·당략을 초월하여 정치 선진화로 거듭나자.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에 반 기업정서가 확산된다든지, 가장 국가사회적 공헌도가 낮은 사람들이 기업의 CEO를 불러세워 호통치는 모습, 좌 클릭된 사회 분위기는 사라져야 한다.

특히 정치적 이해관계로 국민들의 편도체를 지나치게 자극·선동하여 동물적 공격성을 조장하는 오만과 편견의 정치 지도자들, 그리고 황색 언론과 당선되면 기업들을 손 보겠다는 정치 스타들은 뼈를 깎는 자기 성찰로 제 본분에 충실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