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용 한국외대 중국연구소초빙연구원
지난 번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예전에 한국이 중국의 일부였다는 말을 했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황당해 했다. 시진핑 주석은 무엇을 근거로 우리가 중국의 일부였다는 그런 말을 하였던 것일까?

중국 역사에서 정사(正史)로 알려진 첫 기록은 사마천(司馬遷)이 130권으로 편찬한 <사기(史記)>이다. 여기에는 기원전 2500년 전부터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인 기원전 1세기 무렵까지 중국의 역사와 인물 전기를 기록한 것 이외에도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중국 주변의 다른 민족들의 역사까지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제115편 '조선열전(朝鮮列傳)'에서 고조선(古朝鮮)의 역사기록을 다루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정사로 인정하는 삼국시대 이전 역사 기록이 없다. 우리나라의 첫 왕조인 고조선의 본래 명칭은 조선(朝鮮)이었는데, '예 고(古)'자를 붙여서 부르는 것은 이성계의 조선과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역사적으로 고조선은 단군조선(檀君朝鮮, B.C.2333~B.C.1100?), 기자조선(箕子朝鮮, B.C.1100?~B.C.194), 위만조선(衛滿朝鮮, B.C.194 ~ B.C.108)의 세 시기로 구분한다.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단군조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기자조선과 위만조선만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제38권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에서 "주(周)나라 무왕(武王)은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였고… 그 이후 기자는 주나라에 신하로서 알현하였다.(武王乃封箕子于朝鮮… 其後箕子朝周.)"라고 하였고, 제115권 '조선열전(朝鮮列傳)'에서는 "조선왕 위만(衛滿)은 원래 중국의 옛 연(燕)나라 사람이다.(朝鮮王滿者, 故燕人也)"라고 하였다. 이처럼 <사기>에서는 기원전 1100년 즈음 망한 은(殷)나라 왕족인 기자(箕子)를 중국의 주(周) 무왕이 고조선에 봉하여 기자조선을 세운 것이고, 기원전 194년에 중국의 연(燕)지방 출신이었던 위만(衛滿)이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와서 기자조선을 물리치고 위만조선을 세웠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학계에서는 기자가 조선으로 와서 왕이 되었다는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의 기사가 실재보다 1000년이 지나서야 나온 것인데다가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출토되는 청동기 유물과 유적 등이 중국의 것과는 전혀 연관이 없다고 해서 기자조선의 존재를 믿을 수 없다고 본다. 또 위만은 여러 정황을 보아서 중국의 연나라 사람이 아니라 본디 고조선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렇지만 기자나 위만이 본디 우리나라 사람이냐 아니냐는 논란이 있기 때문에 우리 교과서에서 기자조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며, 위만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분명히 밝히고 있지 않다.
근래 중국이 만주를 중심으로 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중국 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기 위하여 동북공정(東北工程) 사업을 벌였던 것처럼, 한(漢)나라 때부터 이미 만주 지역이 중국으로부터 기자가 분봉 받았던 곳이고, 또 중국 출신의 위만 왕조가 들어섰던 곳이니, 고조선 역시 본디 중국 역사의 일부였다는 식으로 역사를 왜곡하였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측에서는 우리가 역사로 기술하고 있는 단군조선이 신화일 뿐이지 역사는 아니라거나 어찌되었건 중국은 여러 역사기록을 가지고 논쟁을 펴고 있지 않느냐며 고대 한국이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의 이러한 역사인식에 우리 고위 관리나 국민들 가운데 그것은 분명 역사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차분히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이제 역사 기록과 유물의 엄밀한 연구를 통해서 우리가 중국의 일부였다는 중국의 역사인식에 냉철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