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문화체육 부국장
또다시 거론하게 됐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 당시 말로만 듣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알다시피, 블랙리스트는 문화예술인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하지 않는 등 불이익을 줄 목적으로 작성한 문화예술계 명단이다. 당시 야당 정치인인 문재인이나 박원순을 지지한 예술인들,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해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를 하거나 시국선언을 한 문화인들이 대상이었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렇게 '찍힌' 사람만 9473명이었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이 지시를 받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구속됐다.
문화예술인들은 그러나 정권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작성될 수 있을 것이란 걱정을 마음 속에서 떨쳐내지 못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19대 '장미대선' 후보를 낸 각 정당들이 문화예술정책에 조금은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지난 달 25일 국회입법조사처와 한국문화경제학회가 개최한 '다시, 문화다 - 차기정부의 문화정책'이란 세미나는 각 정당 문화예술정책의 기조를 엿볼 수 있는 행사였다. 이날 대선 후보들이 제시한 문화공약·정책은 조금씩 차이가 났다.

더불어민주당은 '블랙리스트 사태 예방책으로 정부·지원기관·문화계의 공정성 협약체결과 지역문화진흥기금 출연 기부금의 법정기부금 인정을 제시했다.
자유한국당은 청년문화법인 설립으로 청년 3000명 채용과 문화적기업 인증제 도입을 들고 나왔다. 국민의당은 정보통신 융·복합 콘텐츠를 아우르는 대중문화산업정책 도입과 창작·제작 중소기업의 성장지원을 약속했으며, 바른정당은 한류 플랫폼 구축 등 한류산업육성정책 추진과 전국체전을 확대한 예술문화체육관광제전 개최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정의당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토론내용에 대해 한 참석자는 미흡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준비되지 않았거나 설익은 공약을 내놓았다는 얘기였다.

블랙리스트 사태와 관련해선 정당간 조금씩 다른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의 독립성 문제가 부각되면서 개선방안으로 각 정당이 문예위 위원회 구성 및 위원장 선임과 관련해 각기 다른 시각을 보여준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금처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임명하되 현장 예술인들의 참여와 추천권을 보장하는 방식을, 국민의당은 합의제 자율기구의 위상강화 차원에서 위원회 내에서 위원장을 호선하는 방안을 각각 제시했다.
자유한국당은 문예위를 확대 개편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독립된 '문화위원회'(현행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식)를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역으로 대선후보들을 향해 정책을 제안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같은 달 21일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이하 한국예총)는 '예술문화 창성을 위한 정책제안'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선 공공예산의 편중과 예술 없는 문화융성이 문제로 지적됐다. 한국예총은 이를 위해 민간예술문화 활성화를 위한 지원제도와 체계 강화, 문화강국 도약 기반 구축 및 예술문화 자립형 일자리 창출, 민간예술문화 육성지원을 위한 특별예산 1조원 조성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예총 사상 최초로 진행한 후보초청 세미나였으나 대선후보들은 보이지 않고 각 당의 관계자들만 참석했다.
지역차원의 문화정책 제안도 있었다.
지난 달 말 광주지역 40여개 시민문화예술단체들은 '문화정책 10대 핵심 추진과제'를 발표하고 후보자들의 적극적 정책 수용을 촉구했다. 이들은 문화분권을 통한 문화민주주의 실현, 기초문화예술 진흥과 문화격차 해소를 통한 지역문화 활성화, 문화예술진흥기금 재 조성 및 지역문화 분권 실현 방식의 분배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선후보들은 이 같은 문화예술인들의 얘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문화예술인들의 정책 제안이 부담스럽다면 국비·시비 지원의 자부담 축소, 세금감면과 같은 현실적인 지원부터 살펴보길 바란다. 최저생계비에도 한참 못 미치는 처참한 생활을 하면서도 블랙리스트에 오를 걱정까지 해야 하는 문화예술인들의 고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겠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