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장소 돌며 '슬픔·희망' 마주하다
▲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프 경기장.
'근현대사에 한획 그었던 '이승만·김일성별장' 감상'한국전 견뎌낸 건봉사·관음성지 낙산사 풍광 만끽'평창알펜시아 스키점프경기장'서 올림픽 성공기원

지난 19일부터 3일간 이어진 새얼역사기행의 첫 여정이 조상의 흔적을 찾아본 것이라면, 둘째 날은 21세기 한반도의 분단현실을 돌아보는 여정이었다. 20일 오전 고성을 찾은 기행단은 우리나라 최북단 '통일전망대'와 'DMZ박물관'에서 분단의 아픔을 절감했다. 이 슬픈 현실을 깨치고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정녕 어디 있단 말인가. 여행으로 들 뜬 첫 날의 표정과 달리 둘째 날 기행단의 표정은 사뭇 엄중해 보였다.

▲근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남북 정치인이 지냈던 '화진포'
기행단은 동해안 최대의 자연호수인 화진포호를 차분히 감상할 수 있는 이승만 초대대통령 별장에 도착했다. 별장이라기엔 다소 아담하고 평범한 외관에 기행단은 다소 놀란 눈치였다. 1954년 지어진 이곳은 1961년 폐허가 된 뒤 1999년 전시관으로 복원됐다.
장용수 문화해설사는 "공무원으로 일할 당시 프란체스카 도너 리 여사에게 물품을 기증받기 위해 여러 번 찾아갔는데 양말을 꿰매 신을 정도로 검소한 삶을 사셨던 기억이 난다"며 "그만큼 이들 부부는 검소하고도 겸손하게 살았다"고 말했다.
별장 옆 기념관엔 그들의 유품 일부와 그들의 자택 '이화장'에서 기증받은 자료가 전시돼 있다. 이 전 대통령의 삶과 자취, 조국독립을 위해, 건국과 대통령의 길, 그의 삶과 생활 등을 주제로 꾸며졌다. 기행단은 그의 흉상과 함께 유학 생활, 해외에서의 독립운동, 임시정부와 외교활동 등을 짧게나마 살펴본 뒤 화진포호를 감상했다.
기행단은 약 3㎞ 떨어진 곳에 위치한 '화진포의 성'으로 이동했다. 화진포해수욕장 옆 산기슭에 위치한 이곳은 1948년부터 한국전쟁 전까지 김일성과 그의 처 김정숙, 자녀 김정일과 김경희가 휴가를 보낸 곳으로, '김일성 별장'이라고도 불린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석조 건물로 지어져 당시 건축물치고는 제법 화려함이 돋보였다. 기행단은 김 씨 일가가 쓰던 각종 물품을 모형물로 전시한 것을 둘러봤다. 또 김일성의 정체와 독재체제 구축과정, 한국전쟁 도발 그리고 정전협정 이후 북한의 만행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그 시절을 상상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호수를, 김일성은 바다를 감상하며 휴양을 즐겼구나'라며 기행단은 발걸음을 옮겼다.

▲최북단에서 묵묵히 모진 세월을 견뎌낸 '건봉사'
금강산의 주봉은 북한에 자리 잡고 있지만 그 줄기는 남쪽으로 치닫아 휴전선을 넘어 이곳 고성을 관통하며 미시령을 앞에 두고 살그머니 설악과 손을 잡고 있다.
줄기는 길게 뻗어 건봉산 감로봉으로 이어졌고 그곳엔 '건봉사'가 있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승봉장이던 사명대사가 승병을 일으켰으며, 통도사의 부처님 치아사리 12과를 왜구에게 수탈당하자 전쟁이 끝나고 다시 찾아와 '적멸보궁'에 보관하고 있다. 만해 한용운이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도 알려졌다.
과거 건봉사는 1878년 발생한 산불로 건물 3000여 칸을 소실한데다가 한국전쟁 당시 대부분 폐허가 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나마 형상이 남아있는 무지개모양 돌다리 '능파교'를 건너면 1994년 이후 복원된 '대웅전'이 자리 잡고 있다. 유일하게 타지 않은 '불이문'은 다른 사찰과는 달리 4개의 기둥에 지붕을 올려놓은 사주문(四柱門) 형태를 띠고 있다. 건물을 받치는 기둥모양 주춧돌에 사찰을 수호하는 의미의 금강저를 새겨 사천왕이나 금강역사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불이문 앞에서 지용택 이사장은 "부처는 인연이 있는 사람만을 구제한다. 또 중생들은 업보를 없애주는 것을 바라지 말고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며 불교 사상의 인연과 보편성을 강조했다.
기행단은 수령 300년이 넘은 소나무와 사명대사가 훈련 당시 몸을 씻기고 마시게 했다는 '장군샘'을 거쳐 둘째 날 마지막 목적지로 이동했다.
폐교를 변형해 만든 '고성문화마을'엔 반가운 얼굴이 기행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종택 작가는 인천조형작가협회 회장을 거쳐 한국전업작가협회 인천지회 부회장, 부평예술인회 부회장 역임한 '인천 예술가다'. 그는 젊은 시절 인천에서의 활동을 정리하고, 고향에 문화예술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2013년 이곳을 세웠다. 기행단은 갤러리와 도서관, 스튜디오, 공방 등으로 꾸며진 아기자기한 문화마을을 둘러보며 감성을 깨웠다.

▲3대 해상관음 성지 '낙산사'
이른 아침 기행단은 관동8경 중 한 곳인 '낙산사'에서 마지막 날을 시작했다. 아름다운 비경만큼이나 사찰 내 핀 유채꽃과 겹벚꽃은 이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더욱더 고운 빛깔의 얼굴을 내밀었다.
국내 3대 관음성지이자 해맞이 장소로 인기인 낙산사의 해수관음상과 '의상대', '홍련암'은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관광객의 소원이 차곡차곡 쌓인 '꿈이 이루어지는 길'을 지나면 높이 16m, 둘레 3.3m의 어마어마한 풍채를 자랑하는 해수관음상이 우뚝 서 있다. 온화한 표정의 관음상은 가장 높은 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이들을 품어주고 있었다.
관음상을 등지고 걸어가면 동해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8각모양의 정자, 의상대에 닿는다. 기행단은 이 순간을 사진으로나마 남겨 오래 기억하기 위해 너도나도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풍광을 만끽했다.
바다냄새를 맡으며 걷다보니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처음 찾아갔다는 '홍련암'이 보였다. 절벽 위에 세워져 법당마루 밑으로 출렁이는 바닷물을 볼 수 있다. 의상대사가 좌선한지 7일째 되는 날 바다 속에서 홍련이 솟아오르고 그 속에서 관음보살이 나타나 대사에게 법열을 주었다는 전설이 담긴 곳이다.
구석구석 살펴본 기행단은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입구에 위치한 카페 '다래헌'의 뒤편 야외 벤치에 둘러앉아 전통차와 함께 동해의 맑은 날씨와 풍경을 만끽했다.

▲100여개국·5만여명 스포츠인의 축제가 열릴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프 경기장'
내년 2월이면 한국에서 88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아시아 국가 중 일본에 이어 하·동계올림픽 모두 개최한 나라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기행단이 마지막으로 발길을 멈춘 곳은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프 경기장. '알프스'를 뜻하는 독일어의 알펜(Alpen)에 아시아와 판타지아를 조합해, '환상적인 아시아의 알프스'란 의미를 담고 있다.
스키점프대는 공식 경기장인 125·98m 2기와 보조 경기장 3기로 구성됐다. 깎아내리는 듯 한 높이의 스키점프대를 본 기행단의 눈은 휘둥그레해졌다. 69m 높이인 4층 전망대에 올라 대관령의 전경을 바라본 기행단은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투명한 원통으로 아래를 내려다 본 몇몇은 이내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전망대 내부 벽엔 스키점프 코치 하성조와 국가대표 김현기·최홍철·최서우·강칠구 등 9명의 모습과 사인이 그려져 있다. 한 쪽에 마련된 포토존에 서면 나도 스키점프 선수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온 기행단은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와 메달 소식을 기원하며 버스에 올랐다. 2박3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여행을 마치고 버스에 오르는 기행단의 뒷모습에 슬픔과 희망의 빛이 교차하고 있었다.

/고성·양양·평창=글·사진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