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둣가 옛 삶터, 시간 흘러 '문화공간'으로 …
▲ 개항 이후 칠통마당의 풍경. 갓을 쓴 사람들이 쌓아놓은 쌀가마니 사이를 오가고 있다.
▲ 인중로를 가운데로 왼편이 칠통마당이라 불리던 부둣가이다. 칠통마당은 지금도 인천내항으로 기능하고 있다.
▲ 인천문화재단이 세운 생활문화센터 '칠통마당' H동.
신포역~중부署 부두를 1883년 개항이래 '칠통마당'이라 불러
지금은 1·8부두로 변경 … 한때 고철부두라 불리기도 지난해 칠통마당이란 이름으로 '인천생활문화센터' 개관

진초록-카키-연두-그레이-초코브라운-진그레이. 인천하버파크호텔 15층 라운지에서 내려다 본 인천앞바다는 무지개처럼 서로 다른 빛깔로 띠를 이룬 모습이다.

진초록잎들이 반짝이는 월미도, 화물선들이 떠다니는 카키빛 바다, 연두색의 컨테이너, 초코브라운색 철로, 6차선 도로인 인중로의 6차선 회색 아스팔트가 층층이 눈에 들어온다.

평일이어서인지 시민들에게 주차장으로 개방한 8부두는 한산한 모습이다. 그렇지만 주말이 오면 차이나타운과 동화마을을 찾는 사람들의 차로 가득찰 것이다.

지금의 중부경찰서에서 새롭게 개통한 신포역까지의 부두는 1883년 개항 이래 '칠통마당'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칠통마당에 대한 설명은 고 신태범 박사가 남긴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신 박사는 자신의 저서 <인천 한 세기>에서 "경찰국 뒤 해안 일대는 각지에서 실어오는 볏섬을 받아 올리는 칠통마당이라고 부르는 선창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개항 후 일반상품과 벼가 주요 화물이었고, 그 후 정미소가 생기면서 들어오는 벼와 실려 나가는 쌀이 부쩍 늘었다. 1918년에 축항이 가동하자 일반 화물과 쌀은 그 곳으로 옮겨갔고 칠통마당은 해주, 연백, 강화 그리고 서산, 당진 같은 여러 곡창에서 벼를 실어오는 풍선(風船)의 전용부두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의 말처럼 칠통마당은 1883년 개항 이래 칠통마당은 황해와 부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중요한 삶의 터전이었다. 칠통마당에서 남정네들은 등에 어깨에 볏짐을 지었고, 아낙들은 흘린 쌀을 쓸었으며 "떡 사세요, 떡 사세요~오"를 외쳤다.

칠통마당엔 볏섬과 쌀가마니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골목길 같은 그 사잇길을 들병장수, 떡장수, 엿장수들이 오가곤 했다고 전한다. 물산 객주와 권업소의 거간꾼들의 거래가 활발했던 것은 물론이다. 칠통마당과 미두장은 당시 인천경제의 메카였다.

칠통마당은 이후 1·8부두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인천항 내항인 이 부두는 수년 전까지 고철부두란 이름을 갖고 있기도 했다. 고철을 취급했기 때문인데, 수년 전 고철부두가 '북항'으로 이전하면서 대형 주차장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곳을 왜 칠통마당이란 이름으로 불렀을까.

손장원 재능대 교수는 최근 자신의 SNS에서 "얼마 전 근대건축관련 자료를 검색하다 칠통군(七桶軍)이라는 낱말을 보게 되었다"며 "'당시의 부두노동자로 쌀의 무게를 다는 일을 하는 두량군(斗量軍), 선박과 부두를 오가며 화물을 날랐던 칠통군, 지게를 지고 물건을 날랐던 지계군(支械軍), 선박의 물품을 육지로 운반했던 하륙군(下陸軍) 등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일곱 개의 길로 통한다는 칠통(七通)보다 七桶軍에 눈길이 간다. 그리고 '질통'이란 말도 이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고 덧붙여 칠통마당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제시했다.

지금까지 칠통마당은 7개의 통로로 통한다는 '설'이 존재했었다. 칠통마당에 대한 정확한 어원은 보다 깊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손 교수가 발견한 칠통군들이 일한 일터였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지난해, 칠통마당은 인천생활문화센터로 다시 태어났다. 인천문화재단(대표이사 최진용)이 지난해 6월25일 인천생활문화센터를 '칠통마당'이란 이름으로 개관한 것이다.

하버파크호텔 앞길인 제물량로 건너편 건물이 칠통마당 H동이다. 그 건너편 A동 역시 칠통마당이다. 이 두 건물은 옛 세관창고를 개조해 만든 인천아트플랫폼의 부속건물 들이다.

인천문화재단은 칠통마당을 시민 중심의 복합 문화공간으로 꾸며가고 있다. 시민 문화활동 지원의 거점이자 시민밀착형 생활예술 프로그램을 확산시키기 위한 플랫폼으로도 활용 중이다. 이 곳은 현재 인천의 여러 문화예술 동호회가 즐겨 사용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공간에선 토론과 회의, 음악·무용·연극 등 공연예술 활동을 할 수 있다. 회의·세미나·영화감상·강의가 가능한 것은 물론이다. 문화예술 관련한 책 등 자료도 풍성하다.

역사는 흘러도 이름은 남는 법. 인천사람들의 옛 삶터는 지금 생활문화예술공간으로 시민들을 만나는 중이다.

/글 김진국 기자·사진 유재형 사진가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