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태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 이영태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 <해동지도>에 보이는 덕적군도(群島). 상단의 각험도(角險島)가 악험도이다. 덕적을 중심으로 서남쪽으로 큰 뱃길이 있고 그것이 동북쪽으로도 연결돼 있다고 한다.(규장각한국학 : 古大4709-41)
덕물도는 덕적도(德積島)인데, 과거에 인물도(仁物島)로 불리기도 했다. 해당 섬의 명칭은 덕물도(삼국사기) → 덕적도·인물도(고려사) → 덕적도·인물도(세종실록지리지) → 덕적도(해동지도) → 덕적도·덕물도·인물도(대동지지) → 덕적도(현재)의 순서로 바뀌었다.

중국의 역사서 <신당서>에 득물도(得勿島)로 표기된 것도 덕적도를 가리킨다. <훈몽자회>에 따르면 덕(德)이건 인(仁)이건 '크다'의 뜻이 있고, '물'은 바다라는 의미이기에 덕물도, 혹은 인물도는 '큰 바다에 있는 섬, 또는 바다에 있는 큰 섬'으로 풀이할 수 있다.

덕적도 관련 기록으로 <조선왕조실록>에 15건, <승정원일기>에 12건, <고려사>에 2건이 등장하는데 이중에서 빈도수가 잦은 것은 군사기능이다. 이성계와 최영이 덕적도 등의 왜적을 방비(태조실록)하거나 그곳이 해문(海門)의 요충지이기에 아문의 군무를 개정해야 한다(고종실록)는 등 대부분 군사기능과 관련돼 있다. 물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도 덕적도에서 소정방의 군대를 맞이했다는 기록이기에 군사기능에 해당한다. <고려사>의 기록의 경우, 왜구를 물리치거나 그곳으로 사람들을 이주시켰다는 내용도 마찬가지이다. 

오세종은 백운당 오지섭(吳止燮)의 아들이다. 큰아버지는 덕적팔경을 선정한 오진섭(吳振燮)이고 작은아버지는 <어명시>를 지은 오웅섭(吳雄燮)이다. 오세종은 덕적진 수군첨절제사 오도명(吳道明, 1708~1758)의 27세손으로 어려서부터 아버지 슬하에서 경서사략(經書史略)과 사서삼경(四書三經) 제자백가(諸子百家)를 통독하며 자랐다. <무부달(無不達)>이라는 한시집(漢詩集)을 내기도 했다.

덕물도 삼형제 암초(德物島 三兄弟 暗礁)
碧浪乘船德物行(벽랑승선덕물행) 배 타고 푸른 물결 가르며 덕물도 향해 가니
何人不起歸鄕情(하인불기귀향정) 어느 누구건 고향의 정 일지 않겠나
茫茫滄海接靑天(망망창해접청천) 망망한 바다는 푸른 하늘과 맞닿았고
點點絶嶼似黑鯨(점점절서사흑경) 점점이 외딴 섬들은 검은 고래 등어리 같네
島號善尾何惡險(도호선미하악험) 선미도는 어찌 악험으로 불렀는지
三兄弟礁誘人溟(삼형제초유인명) 삼형제 암초는 사람들을 바다 속으로 유인하네
外祖破沈母漣襟(외조파침모련금) 외조(外祖)의 배 깨져 가라앉아 어머니 눈물 지으셨지
幾人先潛水國京(기인선잠수국경) 몇 사람이나 수국(水國)에 먼저 가셨을까나

작자는 고향 덕적도를 향하고 있다. 선미도 앞을 지날 즈음 수면 위로 드러난 세 쌍의 암초를 발견했다. 암초는 노련한 항해사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나야 할 정도로 해로(海路)의 곁에 위치하고 있었다. 물결이 잔잔하면 상관없지만 파도가 높은 상태에서는 물빛인지 암초인지 분간하기 힘들었기에 '삼형제 암초는 사람들을 바닷속으로 유인하네'로 표현했던 것이다. 암초들 옆으로 절벽을 뒤집어쓰고 있는 듯한 거대한 바위섬이 우뚝 솟아 있었다. 자의(字意)에 나타나듯 험악한 바위섬은 악험도(惡險島)였다. 악험도의 모습 위로 어머님께서 우는 모습이 겹쳐졌다. 외할아버지가 사고를 당한 암초 옆으로 작자를 태운 배가 지나고 있을 때였다. 작자는 그것을 계기로 할아버지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삼형제 암초를 이승을 넘어서는 길목으로 삼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악험도는 서해지역과 덕적도, 그리고 중국을 잇는 해로의 곁에 위치했기에 해난 사고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섬이었다. 악험도 주변의 빈번한 조난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등대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악험도 등대의 설치, 항해업자에 대복음 - 악험도라 불리워 항행자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 하던 인천근해의 선미도 등대 준공식, 연료 절약만도 연 8만원'(동아일보, 1940. 6.5)이라는 기사 제목을 통해서도 뱃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악험도와 암초들에 대한 인상을 짐작할 수 있다.

등대가 설치된 후, 악험도는 선미도(善尾島)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덕적도의 꼬리에 해당하는 아름다운 섬이란 의미이되, '배 깨져 가라앉(破沈)'는 공포를 이겨내려 했던 사람들의 바람을 반영하고 있는 이름이었다. 

<옹진군지>(1989)에는 선미도의 등대(善尾燈臺)가 덕적팔경으로 제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