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대부 가옥 감상 … 분단 현실 실감
▲ 새얼문화재단이 '호국불교와 통일염원'을 주제로 지난 주 32회 새얼역사기행을 진행, 강릉·양양·고성·평창을 돌아봤다. 기행단이 19일 전주 이씨 가문의 고택 '선교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 영화박물관
▲ DMZ박물관
사임당이 살았던 '오죽헌'·허난설헌 생가터
60년간 50개국서 수집한 물품 전시 '박물관'
통일전망대· DMZ 박물관 등 구석구석 발길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복잡하게 돌아가는 지금, 새얼문화재단이 '호국불교와 통일염원'을 주제로 지난 19~23일 '새얼역사기행'을 다녀왔다. 햇수로만 벌써 32년 째다. 78명의 기행단은 강원 강릉·양양·고성·평창 등 한반도의 역사를 품은 구석구석을 살피며 한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오감으로 느끼는 시간을 보냈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 한옥부터 분단의 역사와 고통을 보여주는 현장, 세계인의 축제가 펼쳐질 중심지까지 둘러본 그들의 발자취를 두 차례에 걸쳐 생생하게 전한다.

▲조선시대의 '재원'들 그리고 '좀 살았던' 전주 이(李)씨
새얼역사기행단이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집 주변에 검은 대나무가 있어 이름 붙여진 '오죽헌(보물 165호)'. 시와 그림, 자수에 뛰어난 예술가 사임당과 그의 아들 율곡이 살았던 곳이다. 그들의 흔적이 서린 담벼락에선 온기가, 서까래에선 은은한 나무 향이 피어올랐다.
600년 세월 만큼이나 국내 주거 건축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로 알려진 이 곳 몽룡실에서 율곡은 태어났다. 바로 옆엔 역시 수령 6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율곡매'가 눈에 띈다. 배롱나무라고도 불리는 이 나무는 사임당의 매화 그림과 율곡이 쓰던 벼루 장식의 소재가 됐다고 전해진다. 기행단은 사랑채와 율곡의 영정을 모신 '문성사', 율곡의 <격몽요결> 칭송하며 소중히 보관하라는 정조의 명으로 지어진 '어제각' 등도 함께 둘러봤다.
다음 여정지는 동시대를 살았던 '문학남매' 허난설헌과 허균이 뛰어놀던 생가 터. 조선 대표적인 여류시인 중 한 명인 난설헌의 이름은 허초희다. 그는 중국의 <양조평양록>에서 "허균의 누이가 일곱 살에 능히 시를 지었으므로 온 나라에 여신동이라 불렸다"고 칭송받을 만큼 재주가 비상하고 출중했다고 한다. 동생 허균 역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써, 당시 조선의 문학성이 뛰어났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남매로 후손에게 전해지고 있다.
입구에 들어선 기행단은 난설헌 동상과 허씨 5문장가의 시를 새긴 비석에 시선을 뺏겼다. 동상 앞 병으로 아들과 딸을 먼저 보낸 슬픔을 눌러담아 쓴 시 '아들딸 여의고서'가 새겨진 석판을 본 기행단은 처음엔 눈으로, 두 번째는 마음으로 읽으며 감동에 젖었다. 그리고는 생가 터 주위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한옥의 기품, 그윽한 자태를 감상한 뒤 다시 버스에 올랐다.
300여 년 동안 원형이 잘 보존된 사대부 가옥이자 영동 지방 최고의 고택으로 불리는 '선교장'에 도착했다. 세종대왕의 형 효령대군의 후손인 전주 이씨 가문의 터로, 남녀 출입문이 다르고 안과 밖을 구분하는 내외벽이 남아있어 중요민속문화재 5호로 지정됐다. 입구 주변엔 드넓은 잔디밭이 있었고, 고택 뒤 위쪽으로 뻗은 소나무가 기와지붕과 어울려 장관을 이뤘다. 선교장 연못 옆 활래정은 경포호를 바라보며 풍류를 즐기던 선비들의 안식처로 쓰였다. 가장 오래된 안채, 사랑채인 '열화당', 서재로 활용하던 '서별당'의 건축양식이 제각기 달라 보는 맛을 더했다.

▲소리와 과학, 예술 3박자 '참소리축음기·에디슨·영화박물관'
고택을 나서 경포호와 바다로 연결된 도로를 따라가면 '참소리축음기·에디슨·영화박물관'을 만난다. 음악을 좋아한 손성목 관장이 지난 60년간 50개국을 돌며 축음기와 영화관련 물품을 수집하다 1992년 정식으로 세운 박물관이다.
기행단은 1877년 처음 만들어진 외장형 축음기부터 15개 국가에서 다양한 재질로 만든 150여 개 축음기의 소리를 듣고, 최초의 탄소전구 등 500여 개와 100살이 훨씬 넘은 전구의 빛을 봤다. 또 커피포트, 토스트기, 믹서기, 다리미, 헤어드라이기 등 하루에도 수십 번 쓰는 생활용품 역시 에디슨의 손을 통해 세상에 나온 것을 알게 됐다.
옆 건물로 넘어간 기행단은 젊은 시절 감성을 깨우던 추억의 영화들을 만났다. 영화박물관 역시 손 관장이 수집한 영사기, 촬영기 등 1만5000여 점의 희귀 유물과 영화관련 자료 2만여 점이 전시된 특화 박물관이다. 가이드의 해설에 따라 천천히 이동하던 기행단에서 ''지상에서 영혼으로' 아니야~ 얼마 만에 보는 포스터야!', '오드리햅번 이 때 정말 예뻤지' 등의 말소리가 튀어나왔다. 한 켠에 마련된 강릉 출신 '사극작가 신봉승 작가' 전시관 앞에서도 기억을 더듬었다. 시 '이슬', 드라마 '미워도 다시 한 번', '팔도강산' 등 영화 시나리오 118편, 책 72권 등을 펴낸 신 작가의 활동상을 훑어본 사람들은 '우리나라 강릉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니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참소리 영화관에 들어선 기행단은 60년 전 극장용 음향 시스템으로 흘러나오는 1952년 작품 '사랑은 비를 타고(Signing in the rain)'을 감상하고 첫 날 일정을 마쳤다.

▲분단의 고통이 담긴 '통일전망대·DMZ박물관'
비가 온다는 우려와는 달리 이튿날 아침, 맑은 햇살이 얼굴을 내밀었다. 출입신고소에서 검문을 거친 뒤 동해안 최북단 북위 38도선에 위치한 통일전망대에 오른 기행단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송도까지가 남한이며 다음부터는 남방한계선이다. 그리고 금강산 1만2000봉 중 가장 동쪽 끝에 있는 봉우리이자, 신선 9명이 하늘에서 내려와 바둑을 뒀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구선봉까지는 북방한계선이다. 이 사이가 군대의 주둔이나 무기의 배치, 군사시설의 설치가 금지된 비무장지대(DMZ)다. DMZ는 1953년 7월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됨으로써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각 2㎞씩을 설정한 곳이다. 눈앞에 한민족이 밟고 사는 땅을 보고도 가지 못하는 현실에 먹먹해진 기행단은 그저 해금강을 바라보며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는 6·25 전쟁 이후 냉전의 시간과 그 역사를 생생하게 배울 수 있는 DMZ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너와 내가 닦고 낸 긴 길 형제들 손잡고 줄지어 서고 철조망도 못 막아 지뢰밭도 또 못 막아 휴전선 그 반은 네가 허물고 나머지 반은 내가 허물고 이 다리 반쪽은 네가 놓고 나머지 반쪽은 내가 만들었듯'. 신경림이 지은 '승일교 타령' 중 일부다.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의 상징인 DMZ 안에 위치한 이 박물관은 휴전선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지속되는 군사적 충돌, 60여 년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새 생명이 태어난 생태환경 등을 4곳으로 나눠 전시와 영상으로 보여준다. 1950년대~2010년대까지 남북의 역사적 사건을 둘러본 기행단은 각자의 기억 속에 있는 시간대에 더 몰입하는 듯 했다. 해설사에게 연평·제2연평해전 등 서해 관련 사건을 들을 때는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대성동·기정동마을. 남한에서 유일하게 DMZ 내에 위치한 대성동마을은 전쟁의 상처와 분단 60여 년의 아픔을 고스란히 감내하며 이겨낸 유일한 곳으로, 약 50세대 200여 명이 살고 있다. 납세·국방의 의무가 없는 대신 매일 점오를 하고 외부에서 결혼 상대를 데려오지 못하며, 통행증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이와 같은 곳이 북쪽의 기정동 마을이다.
박소영 법무법인 케이앤피 변호사는 "분단국이라는 것을 체감하지 못했는데 마을 존재를 알고 그제야 다시 한 번 실감했다"며 "우리와는 다르게 사는 이들이 얼마나 불편할 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총성은 멎었지만 지금까지도 철조망 앞에서 총부리를 겨누는 현실과 앞으로 하나 될 희망을 본 기행단은 묵묵히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강릉·고성=글·사진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