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연형 지사-지영례 할머니 인천육군조병창 무대로 8월 국내 첫 징용노동자상
▲ 20일 인천 부평아트센터에서 열린 '인천지역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 제작 발표회'에서 노동자상을 제작한 작가가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인천 출생인 지영례(89) 할머니가 15살이던 1943년. 마을 반장이 동네를 돌며 지 할머니 또래 소녀들 이름을 적어 갔다. 곧 "일을 하지 않는 여자아이들은 일본군 강제위안부로 끌고 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마음이 다급해진 지 할머니 가족들은 수소문끝에 그를 현재 부평미군기지 자리에 있던 일본군 무기 공장, '인천육군조병창' 의무과에 취직시켰다. 다행히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아니었다. 다친 직원들이 병원에 오면 환자 이름을 적고 진찰권 끊어주는 게 다였다. 대신 그는 매일매일 지옥 같은 장면과 마주해야 했다.

지씨는 "하루는 어깨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앳된 소년이 왔는데, 옆에 있던 사람은 떨어져 나간 소년 팔을 들고 있더라"며 "옷소매가 공장 기계에 말리며 절단 사고가 잦았다"고 증언했다.

2009년 작고한 이연형(1921~2009년) 할아버지는 스무 살이 되기도 전, '인천육군조병창'을 중심으로 부평 전역을 돌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조선독립당에 전달했다. 조병창에 강제 징용된 노동자들이 연대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몰래 지원하던 시절이다.

이연형 할아버지는 이 일로 1942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1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그는 사망하기 1년 전인 2008년이 돼서야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포장을 받고 대전 현충원에 안장됐다.

오는 8월 국내 최초로 인천에 세워질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 상을 통해 지영례 할머니와 이연형 할아버지는 부녀(父女)의 연을 맺는다. 인천육군조병창을 무대로 이어진 두 인물을 부녀의 끈으로 엮는 시도다.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 상 인천건립추진위원회는 20일 인천 부평아트센터에서 징용노동자 상 제작 발표회를 열고 작품 건립 계획을 설명했다.

이원석 작가는 이날 상 시안을 공개하며 "인천 강제징용 역사를 담기 위해선 당시 스토리가 필요했고, 두 분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았다"며 "일본군 강제위안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부평조병창에서 일해야만 했던 지영례 할머니와 이곳을 토대로 독립운동을 벌이신 이연형 할아버지를 부녀지간으로 설정해 민족의 역사성과 부평 지역성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상은 정면을 응시하는 아버지의 손을 딸이 꼭 붙잡고 있는 모습이다. 해방을 염원하는 우리 민족의 의지를 표현했다는 게 이 작가의 설명이다.

건립추진위는 앞서 국내 대표 작가 4명을 선정해 작품 시안을 요청하는 지명 공모로 이원석 작가의 '해방의 예감'을 최종작으로 선정했다.

징용노동자 상은 조병창 터를 마주 보고 있는 인천 부평공원에 건립될 예정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지난해 8월 일본 단바망간기념관에 징용노동자 상을 가장 처음 건립했고 국내에서는 아직 세워진 적이 없다.
/김원진 기자 kwj799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