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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인천을 읽다] 오월- 고창환

2017년 04월 21일 00:05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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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지날 때마다 눈이 부시다 잎이 넓은 나무들 세상의 그늘을 가려주지 못하고 나지막이 엎드린 가난 위에서도 반짝거리는 나뭇잎 착한 이웃들의 웃음처럼 환한 잇몸을 드러내며 햇살이 쏟아진다 사람의 흔적이 자목련 향기처럼 아름답다 숲을 떠난 꽃씨들이 큰 길까지 날리고 나른한 향수에 풀린 마을을 내다본다 골목길을 따라 풍선마냥 가벼운 마음들이 들락거린다 자꾸 꺾이는 바람도 세상살이가 조금씩 눈에 보일 쯤이면 바로 펼 수 있을까 마주치는 세상의 모퉁이마다 큰 바퀴가 지나고 마른 돌가루가 날릴지라도 손바닥을 펴서 햇살을 받는다 사는 날까진 기다릴 것이 남아 있는가 오랜 희망을 다시 짚어보듯 푸른 소리를 실어나르는 송전탑을 향해 귀를 세운다.

사월, 이맘 때쯤이면 늘 꽃들의 향연을 보게 되고 꽃들의 빠른 시듦으로 인해 인생의 무상감에 젖어보곤 한다. 일찍이 최영미 시인이 '선운사에서'란 시에서 '꽃들이 피는 건 어려워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님 한번 쳐다볼 틈 없이 잠깐이더군…'라고 읊조린 바 있지만, 절멸의 시간은 언제나 사람들의 소망을 가볍게 일별하며 아름다운 허무의 바다에 데려다놓곤 한다. 우리들은 이즈음 생명의 탄생과 문상(問喪)을 동시에 치러야 하는 오월의 역설적 아름다움에 취해 삶의 고통을 잠시 잊어보기도 하는데… 어쩌랴, 사람들은 모두 꽃이고 '가난 위에서 반짝거리는 나뭇잎 착한 이웃들'인 것을.

▲ 권영준 부개고 교사
고창환은 인천대 국문과와 인하대대학원을 졸업한 인천의 시인이다. 그 후 인천효성중학교 등에서 중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며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교사시인이기도 하다.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다는 삭막한 이 시대에, 아이들과 과자 하나 나눠먹지 못하는 슬픈 이 시대에, 초롱초롱한 눈망울들 앞에서 오월의 푸르름과 희망을 가르쳤던 시인의 모습이 싱그럽게 떠오른다.
이제 곧 오월이다. 오월이 와도 저 꽃들은 쉼 없이 질 것이다. 꽃들이 저리도 쉽게 꽃잎을 떨구는 이유는 혹독한 겨울이 두렵지 않음을 진즉에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떨어진 꽃잎은 튼튼한 씨앗이 될 것임을 믿는다. 다시 온 오월에, 오랜 침울함을 떨치고 일어나 시인이 노래했던 환한 자목련, 쏟아지는 햇살, 푸른 바람 같은 청명한 희망의 소리를 다시 한번 들어보고 싶다. '사는 날까지 기다림으로 송전탑을 향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저 꽃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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