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예총 사무처장·시인
지금은 초등학교라 부르지만 그땐 국민학교라 했다. 9살의 나는 20리길을 걸어 등교를 하고, 지게를 걸머진채 산에 궁불 땔 나무를 하러 가는 것이 하교 후의 일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거의 비슷한 일로 산으로 올라가 진달래가 눈을 녹일 쯤 도끼로 진달래 뿌리를 쳐 뽑아내는 것이다. 눈이 녹아 푸석해진 진달래나무는 아무 말 없이 어금니 깨물며 뽑혀 지개 바스쿠리에 실려 내려왔던 것이 우리가 나무하는 방법이며 모습이다.
끄름이 없고 꽃잎만큼 색깔 좋은 불은 사랑방 화롯불로는 최적이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손이 작은 나는 늘 도끼를 놓쳐 산 밑으로 굴러 애를 먹었던 일, 손아귀의 넓이가 관건으로 자루를 꽉 잡지 못했던 핸디 캡, 어렸던 나에게 그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었다.

그때 나는 아이들과 내려오며 그들을 능가하는 실력발휘를 하게 된 곳은 학교 운동장만큼이나 큰 연못, 졸망한 자갈밭을 끼고 있어 언제부턴가 물수제비를 뜨며 쉬게 했던 곳이다.
기량이란 기량은 모짝 그렇지만, 물수제비를 뜨는 데에도 몇몇 조건을 살펴야 한다. 돌을 투수들의 언더드로우로 뿌려야 하며 손에 쥔 돌도 납다데 하고 팔이 물과 수평을 이루도록 몸을 최소한 낮추는 게 요령이다.

다 모르고 한 일이지만 물수제비를 뜰 때는 그 돌과 수면이 일정한 각도를 유지해서, 물과 부딪치며 뜨는(skipping) 힘이 길게 지속되도록 해야 하며 투수의 직구는 안 되고 돌이 회전을 하도록 검지를 잘 놀리는 게 중요한데 바로 이것이 자이로스코프의 효과를 얻어 부양력(浮楊力)이 높아지는 이치는 성인이 되어 알게 된 일이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도 또래들에게 폼 잡았던 것은 남몰래 연습을 했던 일이지만 돌이 커브를 이루면서 원하는 곳으로 제법 멀리 물결을 만들며 수면 위를 걷는 착각까지 일으킨다.

지금 생각하면 이 모든 매뉴얼을 단숨에 능가하는 조건은 그 돌멩이에 있었던 것이다. 제아무리 좋은 솜씨를 갖추고 있어도 돌의 '몸'이 뭉툭하거나 뾰족하면 안 되고 적당한 무게와 납다데한 모양새가 아니면 그 솜씨는 영 아니다. 어떤 몸의 돌멩이를 주워 던지는가가 물수제비의 운명이 된다,

행복한 부부사이가 의외로 적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통계로 나타나곤 한다. 내 살붙이나 주위를 봐도 그렁저렁 사는 것 같이 보인다. 혼인을 축하해온 인류의 역사는 일종의 반어(反語)가 아닌가 하는 짐작이 설법도 하다. 인간은 오직 상호작용의 관계 속에서만 인간이니, 그 관계의 알짬을 이루는 종류들이 고장이 잦고 속으로 썩어간다는 사실 속에는 어쩜 묵시론적 조짐이 웅성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톨스토이의 행위나 키에르케고르의 생각처럼, 관계의 형식과 성분을 도덕적 실존적으로 바꾸려는 것은 대체로 부질없는 짓이다. 내 작은 손이나 돌멩이의 모양처럼 인간의 몸은, 혹은 몸속에 있는 버릇과 고집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혹 평발로 잘 뛴 박지성, 작은 손으로 잘 싸운 김두한이 있지만 법례로 현실을 설명하기란 그리 쉽지는 않다. 역시 어떤 몸을 지닌 자로 태어나는가가 우연이며 운명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남의 외모를 언급하는 일은 터부시해야겠지만 대화 상대자의 말과 입의 관계를 살펴봤다. 입의 크기와 화법, 말버릇 사이의 관계를 속으로 유추해보는 일이다. 나름의 이치를 찾는다면 그 골자는 역시 몸이 제 운명을 스스로 이룬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전라도의 소리, 경상도의 글'이라는 대조법도 필경은 입의 모양과 무관치 않다는 것으로 한마디로 짚자면 입이라는 몸이 말이라는 관념의 운명이 된다는 것이다.

어떠한 몸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당사자에겐 우연처럼 비치지만 그 우연에 얹힌 몸이 그의 운명을 예비하기도 한다, 가령 이소룡(李小龍)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면 대단한 근육질의 몸, 몸의 디자이너로 드러난다. 허나 영화 속에서 그가 상대한 무술인 들의 동작은 허술하게 보이는데, 이는 연출의 결과보다도 몸의 차이가 들러내는 차별성인 것이다. 이해를 더 돕기 위하여 김연아를 떠 올려보자. 그의 실력이 남보다도 더 얹히게 만든 그 남다른 몸, 외려 그 몸이 그녀의 운명이란 말이다. 천부적인 재능, 어디 그것이 하늘에서 주는 것이라고 할까, 어머니의 몸을 빌어 난 제 각자의 몸이라는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