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용 한국외대 중국연구소초빙연구원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구속된 것이 세 번째라고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선거에서 과반수의 높은 지지를 받고 당선된 첫 여성 대통령이었던 만큼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와 법원의 결정에 대해 언론은 물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구속영장 청구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검찰은 법과 원칙을 강조했다.
검찰이 그토록 내세웠던 법이라는 것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아주 오래 전 원시 인류들이 무리를 지어 살기 시작하면서 생존과 사회질서를 지키기 위해 하나둘씩 규칙을 정했던 것이 그 기원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문명의 탄생지인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 기원전 19세기경 인류 최초의 함무라비 법전이 제정됐고, 중국에서는 기원전 3세기 한비자(韓非子)가 나라의 정치를 바르게 이끌기 위해서는 오로지 합리적인 법에 근간해야 한다는 취지의 법가사상을 집대성했다.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는 엄격한 법치주의 정책을 편 덕에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었고, 그때까지 춘추·전국시대 500여년 동안의 혼란상을 종식시키고 기원전 221년에 마침내 통일제국을 성립할 수 있었다.
흔히 우리는 진시황이 학자들을 땅에 파묻어 죽이고 책을 불살라 버렸다는 분서갱유(焚書坑儒)의 장본인이라 해 매우 포악한 황제로 알고 있지만, 당시 통일제국을 세우는 과정에서 있었던 몇몇 사건들이 잘못 전해지고 과장돼 오해를 산 것들이 많다. 실제로 진시황의 법치주의 정책은 이후 중국 왕조시대 내내 나라 정치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진나라가 부국강병을 이룩하고 통일제국을 세우는 데 큰 기여를 했던 법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한(漢)나라 전반기의 역사를 기록한 <한서> 예문지(藝文志)에서는 법가사상의 핵심적인 이념을 신상필벌(信賞必罰)이라고 설명했다. 공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信] 상을, 죄가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必] 벌을 준다는 뜻으로 어떤 사안에 대해 상과 벌을 공정하게 시행하는 것을 이른다. 하긴 나라에서 상과 벌을 불공평하게 처리한다면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려고 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종종 '法(법)'자를 '물 수(水)'자와 '갈 거(去)'자로 쪼개어 법이란 물처럼 자연스레 흘러가듯이 향해져야 한다는 식으로 법의 이념을 설명하곤 한다. 물론 이러한 풀이가 완전히 틀린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야만 국민들로부터 저항을 받지 않고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중국 최초의 한자 자전(字典)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법자의 의미를 '물과 같이 공평해야' 하고, 바르지 못한 이를 처벌해 '제거[去]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것은 물이 어떤 그릇에 담기든지 간에 언제나 평평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을 보고 물에는 평등이라는 특성이 있다는 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모름지기 법이란 신분의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고 무엇보다 공평하게 시행돼야 한다는 점이 반영된 것이다.

오늘날 법원 마당에 서 있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가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두 눈을 안대로 가려서 최대한 공정한 판단과 처벌을 기하려고 한 것을 보더라도 서양 역시 전통적으로 법이란 '공평'과 '처벌'의 두 가지 원칙을 근간으로 해서 제정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천명하고 있지만, 법보다는 돈과 권력으로 포장된 불법을 끌어대어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들이 여전히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전임 대통령의 구속을 통해 이제 법과 원칙을 어기고 나라의 근간을 무너뜨리면 누구라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돼 법을 농단하는 빌미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보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