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신섭 정치부 차장
"00방송국의 막내 작가입니다." 지난주 한 방송국의 작가가 전화를 했다. 올해 2월 우리 신문이 보도한 기사를 봤다는 것이다. 일흔의 할머니가 어머니와 여동생을 만난 사연이었다. 50년 만에 이뤄진 상봉이라 가슴이 뭉클한 내용이었다.

작가는 인터넷에서 인천을 검색하다 찾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당 기자 연락처와 경찰, 관계기관 전화번호, 동영상 촬영 여부와 당사자 인터뷰가 가능한지도 알려주세요"라고 당당하게(?) 부탁했다. 그쪽에서 취재하면 되지 않느냐고 되묻자 "지역을 잘 몰라서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방송국에도 엄연히 지역 담당 기자가 있는데 말이다.

기분이 언짢았다. 지역언론 기자가 발품 판 기사를 전화 한 통으로 쉽게 뉴스거리를 만들려는 방송사의 관행에 화가 났다. 이들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공중파·종합편성 채널 프로그램이다. 뉴스거리를 찾으려 주로 지역언론 기사를 검색한다. 그런데 기사 내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묻는다. 불쾌감이 불쑥 치밀어오른다.
지난해 9월 기자가 '화성연쇄살인 30년 기획기사'를 보도했을 때에도 그랬다. 한 대형 종합편성 채널 작가는 사체유기 장소, 당시 수사 경찰 연락처, 수사 자료를 메일로 부탁했다. '어렵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방송 출연 인터뷰를 요청했다. 방송에 출연하면 기자님도 좋지 않겠냐고 하면서…

거절하고 며칠 뒤 해당 방송을 봤는데, 황당했다. 취재한 기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기 때문이다. 의구심에 물었더니 자신들이 직접 취재했단다. 몇달 간 수사 경찰을 수소문해 만나고, 정보공개청구를 통해서 얻는 사건 내용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나갔는데도 그들은 당당했다.
이들은 힘들이지 않고 지역언론 기사를 가져다 쓰려 한다. 방송사는 취재 인력이 지역 언론보다 월등히 풍성한데도 늘 이런 식이다.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들은 방송이 공들여 취재했다고 여긴다. 이럴 때면 발품을 팔아 기사를 취재한 지역 언론 기자들은 허탈하다. 상도덕은 장사 세계에만 있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