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수 인천신명여고 교장
대통령의 참담한 실패는 결코 그만의 것일 수 없다. 명백히 우리 모두의 실패다. 이 자각이야말로 더 이상의 불행을 막을 저지선라고 본다. 토인비(A. Y. Toynbee)가 설파했듯이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도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이보다 큰 국가적 비극도 드물 것이다. 정치는 사람에 의해 이뤄지는 현상이니 사람을 기르는 교육과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다."

# 정치의 실패는 교육의 실패
그러므로 교육의 관점에서 이번 비극의 원인과 대책을 생각해 볼 필요가 크다. 교육은 개인이 지·덕·체 세 영역이 조화를 이루도록 이끄는 것이다. 작금의 우리 비극의 원인은 관련자들의 생각과 행동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데 있다고 본다. 조화로운 대통령과 참모, 성숙한 정당과 정치인, 사회시스템이었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리라.

이런 면에서 대한민국 정치의 실패는 교육의 실패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교육은 전통적으로 지식전달이라는 기능을 중시해 왔다. 지식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라서 지식을 습득하려는 행동은 누구에게나 당연하다.

학습권을 헌법상의 기본권으로까지 인정하는 이유이다. 동시에 교육은 받기 싫더라도 받으라는 의미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교육내용은 물론이고 교육평가와 입시제도 등 모든 영역에서 지식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다. 그 결과는 지식의 과잉 혹은 지식 우선주의로 나타났다. 지·덕·체라는 순서도 지식을 우선하는 사고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선(善)이 없는 지식은 위험
해마다 보고되는 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의 학업성취도는 핀란드 등과 더불어 계속 최상위권이다. 지식의 양에 관한 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학업흥미도는 최하위권이다.

한 마디로 '관심 없는 공부를 하지만 그 결과는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 과연 괜찮은가, 결코 아니다. 우리 학생들의 학교생활은 참 힘들다. 부모도 고생스럽고 교사 또한 편하지 않다. 정규과정, 숙제, 방과후과정, 자율학습, 학교생활기록부, 수행평가, 모의고사, 상벌점, 체험학습, 진로고민 등 학교생활은 걱정거리로 가득하다. 그 중심에 지식습득에 대한 부담이 있다.

더 솔직히는 대학진학에 대한 부담이다. 전통적으로 대학은 학생을 선발함에 있어서 지식의 양을 우선해 왔다. 이제는 지식의 질에 주목해야 한다.
선이 결여된 지식이 우려스럽다. 지식의 과잉보다 훨씬 심각하다. 악플이 죽음까지 부르고 악덕상혼은 수백 명을 수장시켰으며 자식에게 모진 학대를 가하기도 한다. 이런 행동에 쓰인 지식이라면 명백히 없는게 낫다.
병역·납세의무 회피와 꽃보직이나 초고액 수임료 독식에도 지식은 악용된다. 역설적으로 많이 배웠기에 가능한 악행이다. 명백히 지식에 선(善)이 결여되었다. 선이 없는 지식은 이렇게 타인과 사회를 절망에 빠뜨리고 위태롭게 한다.

# 체·덕·지로 지식에 품격을
그렇다면 우리 교육이 가야할 방향은 어디일까? 필자의 생각은 지식에 선이 스며들도록 하는 일이다. 다수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지식, 사회의 품격을 높이는 지식 등 살아 숨쉬는 지식으로 순기능할 것이다. 흔히 말하는 교육의 질은 단순히 학력이 아니라 얼마나 품격있는 학력인가에서 찾아야 한다.
이렇게 되려면 지식습득 과정 자체가 변해야 한다. 봉사활동이나 극기, 토론수업 등 체험학습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체육도 활성화돼야 한다. 지·덕·체도 체·덕·지로 바꾸어 써야 한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강조한다는 의미로 말이다.

다행히 교육현장에는 이런 노력이 없지 않다. 필자가 봉직했던 경기도 양서고등학교는 대한민국인성교육대상 최종 후보교가 되고 수능성적 전국 일반고교 4위를 기록한 바 있다.

교과시간을 줄여 체와 덕을 강화하며 교육을 했더니 놀랍게도 지식까지 동반상승한 것이다. 대통령선거를 맞아 후보와 정당들이 저마다 많은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심에 질 높은 교육을 견인하는 교육공약이 자리잡기를 고대한다. 교육의 질을 높이고 교육지원부처의 기능을 효율화하는 지혜와 강력한 추진의지가 담기기를 기대한다. 지식에 품격이 깃들어야 나라의 품격도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