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고단한 등대지기, 바다 안전 지키는 게 보람이죠"
1994년 첫 근무 … 23년 베테랑

뭍에 못 나가는 점이 애로사항

가족에 대한 그리움·미안함도

인천, 등대처럼 미래 밝혀주길

팔미도 등대는 국내 최초 등대로, 1903년부터 인천항을 찾는 선박의 안전항해를 책임져왔다. 등대를 지키기 위해 항로표지관리원(등대지기)들은 뭍에서 떨어진 외딴 섬에 들어가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오늘도 그곳에서 호젓이 등대와 해상교통을 지키고 있는 팔미도 항로표지관리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한국 첫 등대이자 나의 첫 등대"
정창래(56) 인천지방해양수산청 팔미도 항로표지관리소장은 올해로 23년차 항로표지관리원(등대지기)이다.
경기도 평택시에서 태어난 그는 23년전 등대를 지키는 일에 대한 동경으로 인천에 왔다.

팔미도는 1994년 정 소장이 첫 근무를 섰던 섬이다.

이후 고향집과 가까운 곳에 근무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팔미도에 대한 애틋함으로 돌아와 15년째 섬과 동고동락하고 있다. 팔미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이유다.

"주로 등대의 불빛인 등명기와 바다에 떠다니는 부표 등 시설을 점검하고, 기상정보를 확인하는 일을 합니다.

섬 내부 곳곳을 아름답게 정비해 관광객들이 즐겁게 머물 수 있는 해양문화공간으로 만드는 일도 제 역할입니다."

정 소장은 팔미도 외에도 소청도, 선미도, 부도를 2년에 한번 순환하며 근무하고 있다. 근무는 24시간씩 교대하는 형태로, 총 3명이 일하고 있다. 보통 섬에 한 번 들어가면 20일을 꼬박 지내다가 9일의 휴가를 얻어 육지로 나올 수 있다.

밤낮이 바뀐채 생활하기가 고되다가도 밤바다를 안전하게 밝혀주는 일을 한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항로표지관리원도 공무원 시험을 통과해야 할 수 있습니다. 저때만 해도 그렇게까진 아니었는데 요즘은 수십대 1의 경쟁률을 보이는 인기직종이더군요."

여가시간에는 낚시를 하거나 해군 부대 군인들과 족구를 하며 친목을 다진다.

"팔미도에선 노래미와 조피볼락이 가장 많이 잡혀요. 잡았다가 그냥 놓아주기도 하고, 종종 회를 뜨거나 매운탕으로 끓여 동료들과 함께 즐깁니다."

▲외로운 등대지기의 삶
2009년 민간 개방 전까지 팔미도는 다소 쓸쓸한 공간이었다.

면적 0.076㎢에 해안선 길이가 1.4㎞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이지만 사람들이 쉽게 오갈 수 없는 무인도였기 때문이다.

수도와 전기 공급에도 애를 먹어 먹고 씻고 자는 일마저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처음 관리원 직을 맡으며 섬으로 떠날 때 그는 젊은 아내와 초등학교 5학년짜리 큰 아들 두고 나와야 했다. 가장 마음이 아픈 순간이었다. 중요한 가족 행사가 있어도 배가 못뜨면 나올 수없다는 점이 이 직업의 가장 큰 애로사항이다.

그는 "선미도와 같이 산으로 둘러싸여있는 섬에 있는 날에는 외로움이 더욱 크다"고 말했다.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밤새도록 등대를 지키는 날은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집안의 소소한 일들을 등지고 오로지 섬과 등대를 지켜야 할 땐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더욱 짙어졌다.

"지금은 익숙해져서 모두 괜찮다"라고 말했지만 먼 바다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엔 그동안의 외로움이 담겨 있었다.

▲팔미도에 대한 사랑 '∞'
정 소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를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크다.

"팔미도 등대는 100년 이상 인천항의 길잡이 역할을 해온 의미있는 등대입니다. 6·25전쟁에서 전세를 바꾼 녀석이기도 하죠."

팔미도 등대는 2002년 인천시 지방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됐고, 2003년에는 100년동안의 임무를 완수한뒤 최첨단 등대에 모든 사명을 맡겼다.

신 등대 불빛은 10초에 한번씩 깜빡이며 50㎞ 거리까지 비출 수 있다. 팔미도의 때묻지 않은 자연과 뛰어난 해변경관은 이곳에 사는 그의 낙이다.

바위섬으로 이뤄진 팔미도는 기기묘묘한 괴석과 울창한 숲, 사방에서 펼쳐지는 바다 풍경을 접할 수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인천대교를 비롯해 멀리 영종도와 무의도, 영흥도, 자월도, 송도국제도시까지 볼 수 있고 섬트레킹 코스를 타다 비행기가 하늘 위로 날아가는 경험을 할 때에는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 든다.

"최근 '인천상륙작전'으로 널리 알려지며 관광객 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갑작스럽게 방문객이 늘어나면 환경이 훼손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등대 불빛과 함께 팔미도의 역사적 의미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사람들 마음속에 오래 기억될 수 있도록 온 힘을 쏟겠습니다."

/글 신나영·사진 양진수 기자 creamy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