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투표로 시작한다. 특히 요즘 같은 대의 민주주의 하에서는 더욱 그렇다. 다시, 민주주의는 투표로 시작해 투표로 끝을 맺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중요한 게 선거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부여한 권리가 참정권이다. 법이 규정한 범법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선거권, 피선거권을 갖는다. 하지만 이것으로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건 아니다.

세상에는 아직도 특정한 사람들의 참정권을 가로막는 다른 요소들이 존재한다. 이 같은 실상이 수원시 인권센터의 조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수원시 인권센터와 장애인 유권자연대가 12일 미처 한 달도 남지 않은 제19대 대선을 앞두고 모두 10여 곳의 투표소들을 점검했다. 장애인 접근성이 가능한지를 살펴보기 위한 인권영향평가 활동이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경로당과 웨딩홀, 배드민턴 경기장, 평생학습관 등에 설치한 투표소 어느 한곳도 예외 없이 문제점들이 속출했다. 보도 턱 등으로 인한 장애물로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장애인 전용화장실의 미설치로 투표가 어려운 곳이 대부분이었다.

또 투표소 입구에 경사로 없어 휠체어를 이용할 수 없거나 건물 지하나 2층에 투표소를 설치한 곳도 있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입구에 30센티미터의 턱이 있거나 출입문이 작아 접근이 어려운 곳, 깨어진 보도블록이나 빗물배수구 등으로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곳도 여러 곳이었다. 투표소 상황이 이런데 일상에서 마주쳐야 하는 장애인들의 어려움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보행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의 장애인들의 삶을 비장인들이 과연 얼마큼이나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이런 조사라도 하는 곳이 있다는 게 발전이라면 발전이라고 위로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에 대한 배려가 충분하면 할수록 좋은 사회라는 것은 두말이 필요 없다. 반대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비용부터 따지고 나오는 세상이야 말로 염치없고 품격 낮은 사회이다. 참정권은 워낙 엄중한 사안이다. 비록 사회적으로 제도화 하거나 의도한 차별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 또한 엄연한 차별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기회에 투표소만이라도 장애인의 접근이 어렵지 않도록 배려하고 개선하기 바란다. 장애인의 보행권을 다른 어떤 사안보다도 시급한 문제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