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가운 바다햇살을 받은 지 얼마나 지났던 걸까. 미수습자 가족 대표를 맡고 있는 은화엄마 이금희 씨의 얼굴은 붉게 그을려 있었다. 이 씨는 팽목항에서 3년을 기거했다. 이제 목포 신항에서 살고 있다. 이 씨는 이달 4일 오후 5시30분쯤 목포신항 취재지원센터에 나타났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마침 선체조사위원회가 세월호 상륙이 연기된다고 발표한 시점이었다.

자식을 잃고 시신조차 찾지 못한 엄마는 모두를 압도했다. '자식을 잃은 슬픔'처럼 상투적인 구절로 표현할 수 있는 기운이 아니었다. 차라리 법력이 높은 스님의 것과 가까웠다.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 나온 이 씨는 정제된 분노를 담아 말했다.

"내 딸을 찾는데 내가 말할 권리가 없는 나라. 이게 무슨 나라입니까. 브리핑 전에 가족에게 설명하는 게 도의적인 책임 아닙니까. 이제 가족들이 배에 직접 들어가서 아이들을 찾겠습니다."

슬픔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잊고 있었을 뿐이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지옥 같은 나날들을 이어가고 있다. 가족들은 목포신항 철재부두 안에서 세월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워한다. 그렇다고 눈을 떼진 못한다. 그 안에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에는 미수습자 9명과 희생자 304명의 마지막 순간이 남아있다. 그 무게는 1만6000t이다. 세월호를 육지로 올린 까닭은 그들의 흔적을 찾기 위함이다.<관련 기사 3면>

여기에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우리는 세월호의 모습에서 망가진 우리 사회를 반추할 수 있다. 배를 버린 세월호 선장, 과적과 부실한 고박(화물 고정)을 당연시 했던 청해진해운과 관련 회사들, 책임을 회피한 정부, 막말을 서슴없이 내 뱉은 정치인, '시체장사'라며 손가락질 했던 '보통' 시민들. 부식되고, 일그러지고, 부서진 세월호에는 그런 우리 사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씨는 기자들의 전화를 받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미수습자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컨테이너를 찾아가, 세월호를 보러 온 시민인 양 말을 걸었다. 이 씨는 힘내겠다며 내 손을 잡았다. '기레기'로 요약되는 언론의 모습은 세월호에도 녹아있다. 은화엄마 앞에서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던 것은 비단 기자뿐이었을까?
/박진영 기자 erhist@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