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제연구원 이사장
▲ 영화 철도원의 한장면.
인천지하철2호선은 원래 무인(無人)열차다. 승객 외엔 사람이 없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안전요원이 탄다. 작년 7월 개통 후 잇단 고장과 오작동이 원인이다. 인천철도공사 측은 열차제작사에 손해배상액을 50억원 넘게 청구했다. 90여명 분의 예기치 않은 안전요원 인건비다. 다들 한심하다며 혀를 찼다. 그런데 문득 열차를 타고 안전요원으로 근무하는 어르신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과정이 유쾌하진 않지만 '결국 일자리가 창출된 것 아니냐'고. '그 인건비는 결국 인천 등에 사는 시민에게 돌아간 것이 아니냐'고.
정부와 공공기관의 정책 중에 좌측 깜빡이를 켜면서 우회전 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일자리 정책이다. 한 쪽에서는 일자리 창출을 한다고 하면서, 다른 한 쪽에서는 인력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다. 정책적으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일을 벌인다. 예를 들면 인천 남구는 50가지가 넘는 노인일자리 사업에 연 90억원을 넘는 투자를 한다.

다른 대부분의 기관도 각각 시행하는데 공공근로사업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예산이 충분치 못할 때에는 삭감되기 일쑤다. 인천시는 노인 사회참여프로그램 등 세 가지 정책을 기획했지만 얼마 전 예산문제로 한 가지로 합쳤다.

반면, 예산절감을 위해 인건비를 최대한 깎는다. 지하철2호선을 무인으로 계획했던 것도 무관치 않으리라. 공공기관의 청소, 경비, 전기 등 용역직은 수십 년 간 같은 장소에서 일해도 용역회사 직원이라 재입찰시 해고되기도 한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도 청소용역분들은 최근 정규화 직전까지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렸다. 정년을 넘어선 계약직들은 더욱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OECD 2014년도 통계를 보자.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고용률은 31.3%로 OECD 평균의 3배인데 빈곤율은 오히려 47.2%로 4배다. 생계를 위해 계속 일하기는 하지만, 일자리의 질이 형편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부조화를 해결하려면 결국 어르신들이 온전하게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세 가지가 선행돼야 한다.

첫째, 노인과 정년의 개념을 재정비해야 한다. 현재는 65세가 노인이다. 65세는 1889년 비스마르크가 사회보장제도를 만들 때 노령연금을 탈 나이로 시작된 것이다. 당시 독일의 평균수명은 49세에 불과했다. 올해 이미 65세 이상의 인구가 14%를 넘어섰다. 2009년에 UN은 '호모 헌드레드', 즉 100살까지 사는 삶을 기정사실화했다. 영국은 정년제도를 아예 폐지했다. 이제 '현 퇴직시기인 60세 무렵부터 적어도 70세까지'는 소비와 생산 활동을 조화롭게 병행하며 '일하는 시기'라는 개념을 세워야 한다.

둘째, 정부는 일할 의욕이 있는 어르신과 온전한 일자리를 연결해 주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 인천지하철2호선의 경우처럼 경험 있는 사람들을 채용하게 하는 것이다. 그 곳 안전요원들은 제2종 전기차량 운전면허가 있는 퇴직자들이 대부분이다. 또 교사 경험이 있는 퇴직자를 학교 안팎에서 학생 및 환경 지도를 하게 한다든지, 보세사 자격이 있는 물류회사 퇴직자에게 밀수방지 업무를 맡기든지 하는 식이다. 전문성을 인정하고 보수도 정상화 한다. 정부에서 직접 나설 수도 있고 이러한 채용을 활성화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셋째, 노인 취업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위와 같은 보완적 일자리가 늘면 결국 상품이나 용역비용의 상승으로 물가가 오르지 않겠느냐 하는 우려가 생긴다. 지금 우리나라는 저출산 고령화로 노인복지를 위한 세금 등 부담이 늘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어르신들을 더 취업하게 하고 그 비용과 결과물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게 하는 것이 낫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장기적 대책이다. 또 어르신들의 경륜을 활용하는 노인일자리는 청년일자리를 잠식하지 않는다는 것도 인식해야 한다.

무인열차는 40년 전에 나왔다. 공상과학만화인 '은하철도999'에서다. 은하철도999는 컴퓨터로 작동되는 10량이 넘는 무인열차다. 안드로메다로 열차를 타고 가는 철이가 주인공이다. 그는 공짜로 기계의 몸을 얻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메텔과 같이 여행에 나선다. 그런데, 그 열차에도 차장은 있다. 푸른 코트에 모자를 눌러썼다. 투명인간이며 대사도 별로 없다. 그런데, 그가 있어서 든든했다. 다음 행선지도 알려주고 또 위급한 상황에 앞장서 주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무인열차보다 유인열차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