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1780㎞ 자전거 종주 … "한국인에 용서를"
▲ "베트남전 때 자행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사과하고 싶다"며 하노이부터 호치민까지 1780㎞ 해변 도로를 자전거로 종주한 이강안(오른쪽)·한태건씨. /이상훈 기자 photohecho@incheonilbo.com

한달간 '하노이~호치민 해변 종주'


위령비 청소·제기차기놀이 등 봉사
7월 일본서 위안부 문제 알릴 예정


우리 근·현대사는 대부분 일방적인 피해자로 기술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당시 핍박과 설움 속 세월이 할퀴고 간 상처가 아직도 버젓이 남아 있다. 지울 수 없는 일본군 강제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일본에 사과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베트남전 때 자행된 민간인 학살은 대한민국을 가해자로 지목하는 몇 안 되는 사건 중 하나다. 일부 단체들은 베트남 전역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이 80여건, 피해자만 9000명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방부나 당시 참전 용사들은 인정하지 않는 부분이다. 한국 내부에서 십수년 이어진 갈등은 아직까지 입장 정리 전이다.

얼마 전 20대 청년 두 명이 베트남 수도 하노이부터 남단 호치민까지 이어지는 1780㎞ 해변 도로를 자전거로 종주하는 고생길을 마쳤다. 이들은 베트남 서쪽 해변을 따라 나 있는 남북 종단 1번 국도를 내달렸다. 하루 40~50㎞, 많게는 150㎞ 이상을 자전거로 이동했다.

이 길은 바로 "베트남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싶다"며 떠난 여정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그 나라의 문화와 생활에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자동차는 너무 빨라 자칫 놓치는 게 많을 수 있어 선택한 것이 바로 자전거였다. 그래서 종주 명칭도 '바퀴 달린 사과'로 정했다.


▲1968년. 49년 전 그날
인천대학교 체육학과 4학년 이강안(25)씨와 최근 같은 대학을 졸업한 한태건(26)씨는 지난 2월1일부터 3월4일까지 한 달 넘게 이어진 행군에서 '하미 마을'을 방문한 기억을 공들여 설명했다.

베트남 중부 꽝남성(도) 디엔반현(군) 디엔즈엉사(읍)에 위치한 이 마을에는 2000년 대한민국 참전군인 단체 등의 지원으로 세운 위령비가 있다.

이강안씨는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사과하고 한국의 전통문화를 전하기 위해 찾은 마을에서 오히려 위로를 받고 왔다"고 했다.

'한베평화재단' 소개로 만난 학살 피해 유가족은 찾아온 한국인에게 적대감 대신 손을 잡아줬다. '하미 마을' 주민들은 1968년 2월 부근에 주둔하던 한국 군인들에 의한 대량 학살이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강안씨는 "사건이 있던 당시 두 다리를 잃은 할머니는 2013년 세상을 떠나며 자식에게 유언으로 '한국인을 더는 미워하지 말라'고 남겼다고 한다"며 "만난 유가족 역시 논 개간 중 전쟁 후 방치된 수류탄으로 실명을 한 아픔이 있지만 우리에게 따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한태건씨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사과는 위령비를 찾아 쓰레기를 줍고 새똥을 청소하는 정도였다"며 "위령비에 적힌 피해자 가운데 어린아이들도 많아 마음이 아팠다"고 전했다.

'하미 마을' 위령비 부지는 베트남 정부가 2011년 1월 국가적으로 지정한 역사유적이다. 위령비 전면엔 희생자 135명의 이름과 나이가 적혀 있다.

▲공놀이, 제기차기로 나눈 마음
두 청년이 피해 마을만 찾아다닌 건 아니다. 현지 학교와 보육원을 돌며 아이들에게 체육을 가르쳤다. 체육학과 출신인 이들에겐 전공을 살린 봉사 방법이었다.

한태건씨는 "하노이에 있는 한 보육원을 찾아 아이들에게 한국 전통놀이인 제기차기와 여럿이서 원반을 던지는 '플라잉 디스크'를 알려줬다. 반응이 아주 좋았다"며 "학교나 길거리 아이들이 모여 있으면 무작정 다가가 공 놀이 등 체육 봉사를 진행했는데 어떤 때는 수십 명이 몰려 당황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자신들의 전공과 제기차기 등이 익숙하지 않은 베트남 어린이 눈높이를 고려해 고안한 맞춤형 봉사 방법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이강안씨는 "아이들은 전쟁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세대"라며 "우리가 가진 재능으로 베트남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뜻밖에 찾아온 유명세
여정 중간 지점인 다낭에서부터 어쩐 일인지, 베트남 현지인들이 두 청년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베트남 한 언론사와 진행한 인터뷰로 이들은 반짝 스타가 돼 있었다.

한태건씨는 "커피숍에서 계산을 하려고 하니 어떤 중년의 신사가 우리 몫까지 돈을 지불했더라"며 "그 남성분은 특별히 아는 체도 하지 않고 유유히 자리를 떠났지만 우리를 향한 마음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강안씨도 "이렇게 도움을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닐 정도로 베트남에서 화제가 됐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사과를 위해 찾은 우리에게 도리어 감사한 마음을 보태줘 몸 둘 바를 몰랐다"며 "사실 여행 전에는 한국인들에 대한 거부감이나 낙후된 지역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다"고 보탰다.

한 달 넘는 일정에 쓴 돈은 400만원 정도. 아르바이트와 이들의 계획을 미리 안 인천대 교직원과 기업들 도움으로 마련한 돈이다.

이강안씨는 "하루 평균 80㎞를 달려야 하는 강행군이지만, 한국과 베트남 양측에서 도와줘 큰 문제없이 지낼 수 있었다"며 "한국과 베트남의 역사적 관계를 회복하는 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으로 이어지는 여정
이강안씨는 지난해 여름방학 기간에도 친구와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부터 시카고까지 3500㎞를 자전거로 횡단하며 독도 홍보 활동을 펼쳤다.

이씨는 "미국 자전거 여행 동안 많은 외국인을 만나면서 독도 알리기에 나섰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세계에 알릴 필요성이 있겠다고 마음 먹었다"며 "일본 현지에 가서 위안부의 역사적 진실을 알리기 위해 역사 공부를 하던 중 베트남전쟁에서의 한국군 민간인 학살사건도 새로이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사과를 받아야 할 역사도 있지만, 우리가 사과해야 하는 역사도 있다는 걸 알았다"며 "'일본 전 베트남으로 가 사과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조언을 듣기 위해 찾아간 한태건 형과 뜻밖에 의기투합으로 같이 떠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는 7월에 일본으로 떠난다"며 "베트남에는 단둘이 갔지만 올여름엔 인천대 학생들과 일본 현지 학생들 참여로 여럿이서 라이딩을 이어갈 것"이라며 "전체 일정을 참여하지 않고 일정 구간에만 참여해도 되도록 해 동참 분위기를 이끌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이같은 노하우를 체육학과에 물려줘, 과 차원에서 겨울에는 베트남, 여름에는 일본으로 '사과 여행'에 나설 수 있게 기틀을 닦고 싶다는 뜻을 보이기도 했다.

/김원진 기자 kwj799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