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정신' 현대적 해석으로 본받아야
▲ /그림=유사랑 화백
공정사회 구현위해 청백리 의지·품성·업적·노력 계승 필요
유교 관심 증대 불구 콘텐츠 부족 … '이원익 공원' 좋은 사례


▲공정한 한국 사회를 만드는 장면
장면1.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결정돼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청에 출두하는 장면이 방송에서 생중계되고 있다. 지난 4개월 간 한국사회의 이슈는 대통령 탄핵문제였다. 언론에 보도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85% 국민이 대통령 탄핵을 잘된 결정이라고 지지를 표명했다. 불행하게도 한국인들에게는 전직 대통령이 검찰청에 출두해 조사를 받는 모습이 이제 익숙한 장면이 돼 버린 듯하다.
장면2. 2016년 9월 28일부터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 법이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의 적용 대상은 공직자,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과 그 배우자까지 400여만 명에 이른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금품 수수와 부정청탁 금지, 외부강의 시 수수료 제한 등 세 가지다. 이 법이 제정된 결정적인 계기는 2011년 '벤츠 검사 사건'이다. 현직 여검사가 변호사로부터 사건 청탁 대가로 벤츠 자동차 등 고가의 선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 받은 사건이다.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자 이 법의 제정 필요성이 재기된 것이다.
장면3. 광명시 오리서원에서 조선시대 청백리 오리 이원익 선생을 주제로 하는 청렴인성교육이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다. 공직자의 표상인 이원익 선생의 정신을 배우고 이원익 유적지를 답사하는 이 강좌는 인기가 좋아 전국에 있는 공직자들이 수강을 희망, 교육 대상을 전국 공직자로 확대해 실시 중이다. 필자도 참여한 이 강좌에 대한 공직자들의 반응은 이원익 선생의 청백리 정신이 지금 공무원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면4. 남양주에 있는 실학박물관에서는 청렴 정신을 배우고자 하는 기관 및 단체를 대상으로 '청렴문화 체험 교육을 위한 다산 공·렴(公廉) 아카데미'를 실시하고 있다. 역시 전국의 많은 공직자들이 이 강좌를 수강하고 있다.
장면 1에서 4까지의 일들은 별개의 사안이 아니다. 앞의 두 개는 한국 사회를 공정한 사회로 만들려는 노력의 과정을, 뒤의 두 개는 그 동력을 조선시대 청백리 정신에서 구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계적인 반부패운동공동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매년 세계를 대상으로 부패인식지수를 조사해서 발표하고 있는데, 2015년 한국은 조사대상 175개국 중 43위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 사회가 부패 척결과 공정 사회 구현을 당면 과제로 설정하고 이의 해결을 위해 매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청백리 오리 이원익의 청렴한 자세, 원칙과 균형 감각, 국가 경영 능력
역사상 청렴을 해치는 부정부패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위정자나 관리들이 백성을 직접 수탈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직무와 관련한 권한을 남용해 특정인에게 특혜를 주고 이권에 개입, 사익을 취하는 행위이다. 전통시대 관료 부패는 전자가 많았으나, 오늘날에는 후자가 많다.
조선시대는 청백리제도를 실시했다. 청렴한 관리를 청백리로 선정해 다른 관료의 모범으로 삼은 것이다. 조선시대 청백리에 이름을 올린 이는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218명 정도이며, 이 중 경기 출신은 60명이나 된다.
한편 탐관오리는 장리로 지목해 관료 생활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더 이상 존립할 수 없게 만들뿐만 아니라 자손에게도 불이익을 줘 관료들에게 경계를 삼는 제도도 병행했다. 부패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청백리의 요건은 청렴이 가장 중요하지만 능력과 업적도 중요하게 평가됐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오리 이원익이다. 이원익은 경기도 광명에 묘가 있고, 유적이 있다. 전국의 공직자들이 그의 정신을 배우기 위해 광명을 찾는다. 이원익은 임진왜란 전후 시기인 16, 7세기 인물이다. 그는 3명의 왕을 모시고 40여 년간 재상을 지냈는데도, 퇴임 후 비바람도 가리지 못하는 몇 칸의 초가집에 살면서 떨어진 갓에 베옷을 입고 쓸쓸히 혼자 노년을 지냈다. 보는 이들이 그가 재상인 줄 알지 못할 정도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전선에까지 나아가 전란을 극복하는데 기여했다. 이순신 장군이 모함을 당해 곤경에 빠지고 유성룡마저 이순신을 버렸을 때, 이원익은 그를 지지해 이순신 장군이 나라를 구할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 또한 광해군이 정적을 제거하고 폐출하려 할 때 왕에 맞서 반대하다가 유배를 갔으나, 인조반정 뒤 광해군이 폐위되고 그를 사사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을 때는 이를 반대해 광해군의 목숨을 구했다.
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 안주 목사로 부임해서는 양잠을 권장하고 확산시켜 안주 백성들의 경제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었다. 1608년에는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대동법을 시행해 백성들의 생활과 국가의 재정을 동시에 안정시켰다.
오늘날 우리가 조선시대 청백리 정신에서 계승해야 할 것은 그들의 청렴결백만은 아닐 것이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지, 강직하면서도 균형감각을 갖춘 품성,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일, 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는 국가를 경영해 그 위기를 극복하는 노력까지 포함하는 것이 돼야 할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청백리가 이원익이다.
물론 모든 청백리가 이 같은 조건을 갖춘 것은 아니다. 일부 청백리는 청백리란 이름이 무색하게 부패에 연루된 이도 있었고, 또 어떤 이는 무사안일에 빠져 백성들의 생활을 도탄에 빠지게 했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그 같은 부정적인 사례에서는 교훈을 얻고, 긍적적인 사례에서는 우리시대를 변화시키는 동력을 우리의 전통에서 찾는 노력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에 조선시대 청백리를 다시 되돌아 보는 것이다.

#청백리 정신의 현대적 해석
지금 이 시점 한국 사회에서 조선시대 청백리를 다시 논의하는 것은 한국 전통 문화,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조선시대 유교 문화를 재해석해 우리 시대의 중요한 정신 자원으로 삼으려는 노력과 관련이 있다.
19세기 후반 한국사회가 근대사회로 진입하고, 1910년 일제 식민지가 됐다. 한국인들은 식민지 지배를 당한 원인이 유교에 있다고 생각하고 유교를 버렸다. 그런데 최근 한국 사회에서 유교를 긍정적으로 보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왜 그런가!
2014년 한국관광학회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유교가 한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 42%가 긍정적인 응답을, 22.6%가 부정적인 응답을 했다. 또 같은 해 중앙일보가 조사한 선비에 대해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인 75%가 선비정신이 중요하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부정적인 평가는 12%에 불과했다. 이 조사 응답자들은 인격 수양과 청렴이 선비의 긍정적 요소로, 권위주의, 당파 싸움, 융통성 부족을 부정적 요소로 지적했다. 한국이 선비정신의 영향을 받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있다'와 '없다'가 각각 41.55%와 45.7%로 비슷하게 나타났다.
이 두 조사는 한국인들이 유교와 선비에 대해 그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으며, 유교를 한국 사회 발전에 활용할 수 있는 문화자원으로, 조선 시대 선비 정신을 우리시대에 필요한 정신적 자원으로 보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특히 선비의 청렴을 중시한다는 조사 결과는 부패를 척결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이다.
그런데 전통적인 유교는 21세기 4차 산업 혁명이 진행되는 현재의 모습과 너무 먼 거리에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유교를 과감하게 재해석해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대담한 선택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 우리가 재해석해서 계승해야할 청백리 정신을 청렴한 자세를 기본으로 하고 원칙과 균형 감각을 갖춘 판단력, 국가 및 사회적 과제를 해결할 능력까지 구비한 오리 이원익을 특정해 그의 생애와 활동상을 살펴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청백리 콘텐츠 활용
한국인들의 유교에 대한 관심 증대 결과, 현재 전국적으로 유교 관련 문화공간이 복원 조성되고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하드웨어는 구축되고 있으나 콘텐츠가 부족하다. 서원과 향교에서 펼쳐지는 문화재 활용 사업에서 시대에 맞지 않는 전통적 유교 프로그램을 찾아볼 수 있으나, 현대 한국인들이 공감할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재해석된 유교 콘텐츠,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조선시대 선비의 정신에 대한 프로그램을 갈구하고 있다.
재해석된 청백리 정신 콘텐츠야 말로 유교 문화공간 현장에서 교육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학교 교육, 공직자 교육에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술창작과 다양한 콘텐츠의 생산으로 연결할 수 있다. 그리고 청백리 주제 역사 공원을 조성하고 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광명시가 이원익 공원을 조성하고 이원익 길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고도 주목할만한 일이다.
청백리 정신의 재해석은 한국 유교를 우리시대에 맞는 문화자원, 정신자원으로 만드는 출발점을 만들어 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한국 사회가 공정한 사회, 부패가 없는 사회로 만는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강진갑 경기대 교수·경기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