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 김영승 시인의 시 <반성16>
김영승 시인이 시집 <반성> 발간 30주년을 기념해 문화회관에서 시낭송의 밤을 갖는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30년! 하고 놀란다. 어느새 30년이 됐단 말이지. 나는 유독 시간에 대해 갈피를 잘 못 잡는다. 차근차근 따져보면 아하, 그렇게 세월이 흘렀구나 하지만, 어떤 경우는 갈피를 따져도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세월이 있다. 김영승 시인은 내내 장발에 외소한 몸을 유지해왔다. 가난도 곁다리로 붙어 있었다. 옷차림마저도 세월과는 무관했다. 그러니 그에게서 반성을 쓰던 1986년을 유추하기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시인은 한결같이 시인의 풍모를 하고 시를 써왔다. 철학을 전공한 그가 계간 <학산문학>에 연재했던 <김영승의 에로테쿰>에서 보여주었던 방대한 철학과 종교의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사유는 그의 몸피가 얼마나 단단한지 보여주었다. 그는 한때 엄청난 술꾼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술을 마시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술을 진탕 마실 때 썼던 <반성16>은 술꾼이라면, 술꾼이 아니어도 술꾼 옆에 있어 본 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감할 수 있는 시다. 어려운 단어 한 자 없고 길이도 짧아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시다. 그러나 이 시를 그 많은 술꾼 시인이 아무도 쓰지 않았다는 데는 고개가 갸웃해진다. 오로지 김영승 시인만이 이 시를 썼다. 술에 취해야 보이는 글씨. 경지에 도달해야 깨달을 수 있는 한 세계가 오롯이 시 속에 있다. 이런 술꾼이라면 어떻게 미워할 수 있을까. 그러니 그 곁에서 늘 든든하게 그의 안위를 염려하고, 그의 시 세계를 응원해주는 제물포고등학교 동창들이 있고, 제자들이 있는 것이다.

그들이 열어준 것이 분명할 <반성> 시집 발간 30주년 시낭송의 밤은 사람과 시가 분리될 수 없는 천생 시인인 그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모든 문인의 소원이기도 할 테지만, 그가 시를 써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시를 쓰면서 더욱더 건강해지면 좋겠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