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헌 인천개항장연구소 연구위원
국제항구로서의 인천의 연원은 무척이나 오래됐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지금의 연수구에 있었던 능허대와 한나루는 백제시대부터 중국을 오가던 사신의 나들목으로 이용됐다. 이곳에서 출발한 배는 서해를 가로질러 산동반도에 도착했는데, 육로가 막혀있었던 시대에 이 해로는 중국으로 갈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방법이었다. 이후 조선시대까지 능허대, 한나루가 이용됐으며 이와 연관된 설화들이 인천시 곳곳에 산재한다.

1883년 개항되면서 조선의 관문이었던 인천항은 청나라를 넘어, 세계 각국 사람들의 출입할 수 있는 국제항이 됐다. 서양인들의 시선에 비친 조선의 모습도 의미가 있지만, 조선인에 시선에 포착된 서양인의 모습 역시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즉 서양인들은 당시 조선인들이 처한 상황을 비추는 거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국제도시 인천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 표상된 세계인의 모습을 살펴보자.

'인천항 저녁 빛에 흑운 같은 검은 연기를 토하며 살같이 들어오는 화륜선 화통 열어 놓는 소리에 인천상업계의 졸음을 깨뜨리는 어물전에 꼴뚜기 장사가 먼저 날뛰듯이, 밥장사나 하고 방세나 받아 먹는 여인숙 번두들이 잔판의 배를 타고 정박한 화륜선에 들어가서 손님 마중을 하는데, 돈푼이나 잘 쓸 듯한 일등실 손님 앞으로 몰려가서 여인숙에 갈 손님을 찾는다. 키 크고 코 높은 서양 사람들은 모양도 꿋꿋 밋밋하거니와 행동거지도 또한 활발하여, 여인숙으로 가는 사람은 여인숙 번두의 안내를 따라 서고, 경인선 기차 타려는 사람은 화륜선 보이에게 짐만 내어 맡기고 잔판으로 내려간다." - (이인직, 모란봉)

인천항으로 위풍당당하게 들어오는 화륜선, 그 기적 소리를 화자는 '인천상업계의 졸음을 깨뜨리는' 소리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어물전에 꼴뚜기 장사가 먼저 날뛰듯이' 일본인(여인숙 '번두')이 먼저 그 이익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천항에 내리는 '키 크고 코 높은' 서양인, 그들은 '모양도 꿋꿋 밋밋'하며 '행동거지'도 자신감 있어 보인다. 조선인(화륜선 보이)듯한 사람들이 보인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결국에는 서구 근대문명의 자장 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조선의 현실을 비유하고 있는 듯하다.

이처럼 개항과 더불어 인천에는 많은 외국인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일본인을 비롯해 청나라, 서양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적과 문화를 가진 이들이었으며 대부분 교역에 종사했다. 인천의 개항은 이전까지 대외교역의 중심이 부산항에서 인천으로 옮겨짐을 의미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개항 초기 인천항에는 대규모의 대외교역을 감당할 여건이 마련돼 있지 못했기 때문에 교역을 위해서는 시설 확충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이에 따라 항만시설이 확장됐고, 감리서와 해관이 설치됐다. 거기에 서울과 인천 간 철도 건설이 화물운송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면서, 인천항은 명실상부 조선의 관문항이자 대표적인 대외통상의 중심지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됐다.

21세기 동아시아 물류 중심으로 재도약을 위해 인천항은 새롭게 준비하고 있다. '인천신항'과 '인천항신국제여객선터미널' 등이 조성 중이다. 이러한 대규모 토목공사는 주민들의 불편을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조정하고,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