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환 전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필자는 고향이 서울시 성북구 동소문동이다. 6·25가 일어나던 해인 1950년도에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으나,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뒤 서울생활을 접고 인천시 북구(현 부평구) 부평동 284번지로 이사를 왔다. 아마 고등학교시절이라 기억된다.

당시 부평에는 꽤 큰 규모의 미군부대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관련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이렇다할 생활방편이 없었던 터, 어머니도 부대 안에서 카투사 식당을 하게 됐고 덕분에 미국 군인들과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돌이켜보니 이 때 덩치 큰 미군들과의 만남이 후일 선수시절 체격이 우리와 다른 외국선수들과 격돌했을 때 두려움이나 위압감을 별로 느끼지 않게 해줬던 같다. 필자는 부평에 정착한지 얼마 뒤인 1969년 5월10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프로복싱 데뷔전을 갖는다. 인천에서 사귄 친구들이 응원을 와줬으나 시합에서는 패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첫 출발을 잘하고 싶었는데, 이기지 못해 참으로 아쉬웠다.

인천이란 도시는 필자에게는 꿈을 꾸게 만든 곳이다. 그 때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가끔 영종도와 을왕리에 가서 대나무에 낚싯밥을 엮어 망둥이를 잡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프로복서로서의 꿈은 계속됐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에 매진하면서 비지땀을 쏟았다. 이러한 노력과 친구들의 응원에 힘입어 이후 시합에서 연전연승을 거뒀고 미군부대 안에서 열린, 태평양에 주둔하는 전(全)미군복싱시합에서도 우승했다. 이를 계기로 필자에게는 또 하나의 열렬한 후원군이 생겼다. 바로 미군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미군부대 버터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필자의 외조카가 지금 영종도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어 가끔 놀러 가곤 하는데, 만날 때마다 꼭 옛얘기를 해준다. 그 때 우리의 어려웠던 시절을 말이다. 조카가 살고 있는 아파트, 하늘 높은줄 모르고 쭉쭉 뻗은 아파트 건물들이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인다 하겠다. 인천은 필자의 복싱인생 반을 차지한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부평에서 프로복서로 입문한, 미군부대에서 식당하는 한 평범한 아줌마의 아들이 드디어 5년 만에, 1974년 7월4일 세계챔피언이 된다. "엄마야, 나 챔피언 먹었어!" "대한국민 만세다!" 당시에만 해도 무척 낯설었던 머나먼 아프리카대륙에 있는 남아프카공화국에서 날아든 낭보에 그날 온 나라는 하나가 됐고 사람들은 서로 부둥켜안은채 기쁨을 나눴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우리 프로복싱 사상 처음으로 적지에 나가 싸운 원정시합에서 이겼기에… 그랬기 때문에 시합에 나섰던 필자는 물론 국민들의 기쁨이 더욱 컸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기쁨도 잠시, 1975년 3월14일 미국 LA에서 열린 2차방어전에서 멕시코의 자모라 선수에게 KO로 패하며 챔피언벨트를 내줬다. 이후 절치부심, 인천 선인체육관에서 가진 재기전을 모두 성공하며 1976년 10월16일 기필코 세계챔피언을 되찾고자 멕시코의 자모라 선수와 한맺힌 설욕전을갖는다. 아! 또다시 12회 KO로 패하고 만다. 희비가 엇갈린 제2의 고향 인천!
그러나 인천에서의 패배는 세계 복싱사에 유례가 없는 '4전5기'의 기적을 만들었다. 인천 선인체육관에서의 패배가 필자로 하여금 한 체급을 올려 두 체급 세계챔피언 제패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지난 2013년 선인체육관이 건립 40년 만에 우리 국민의 눈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볼 때 만감이 교차하면서 그곳에서 시합을 했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러나 더큰 우리의 미래를 위해 그 위용을 양보했다고 생각했다. 보라! 우리 인천국제공항의 위용을! 세계 최고의 공항으로 12년을 계속 챔피언자리를 지키고 있다.

필자가 놀던, 망둥이를 잡아 구워먹던 그곳이 이제는 온세계의 비행기가 이·착륙을 하는 세계최고의 공항이 됐다.
지금 우리나라가 아무리 시끄럽다해도 우리는 견디리라. 반겨서 맞이하고 안녕으로 보내며 재회를 약속하는 인천공항처럼.

우리는 정말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또 그렇게 살기로 마음 먹은 곳이 꼭 인천이 돼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천은 정말 멋진 곳이다. 글자 그대로, 사람의 물결이니까. 맥아더 장군의 상륙작전도,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의 상륙도 결국 인천이 아니었던가!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