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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미국이 제2차 대전 때부터 시작된 적극적 '개입주의' 외교에서 손을 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차 대전에 본격적으로 참전한 1941년부터 시작된 적극적인 개입 정책(engagement policy)이 약 76년 만에 단절될 상황에 처했다.

뒤집어 말하면, 이는 2차 대전 전까지 '전통적 외교노선'으로 고수해온 '고립주의(isolationism)'로의 회귀이자 베트남전 개입 실패 후 잠시 득세했던 '신고립주의(neo-isolationism)'의 부활 노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미국 우선(America First)'을 주창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내놓은 2018 회계연도 재량지출 예산안 제안서의 내용은 이 같은 기류와 경향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초대인 조지 워싱턴 전 대통령 이후 이어져 온 고립주의 전통은 제2차 대전 발발 이후 루스벨트 정부가 연합군의 선두에 서고, 종전 후 미국이 각종 국제기구 창설을 주도하면서 '개입주의'로 방향을 틀었다.

미국은 당시 전화(戰禍)에 신음하던 서유럽 국가들을 돕고자 '마셜 플랜'을 진행하고 세계은행(WB)을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 창설을 주도해, 안보와 경제에서 미국 위주의 세계 질서를 만들었다.

이후 미국은 소련과 경쟁하며 '반(反)공산주의 연합'의 좌장, '세계의 경찰'임을 자부하며 적극적으로 국제 문제에 개입, 동맹국과 자국의 이익을 절묘하게 배합하는 전략적 노선을 추구해왔다.

미국은 이 같은 적극적 개입 정책을 통해 상당 부분 국력을 소모해야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 반대급부로 세계의 경찰로서 미국의 확고한 리더십을 비롯해 상당한 국가적 이익을 얻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1960년대 베트남전에 개입했다가 쓰라린 실패를 맛본 후 한동안 '신고립주의'가 득세하기도 했지만, 2001년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9·11 테러 이후 미국이 곧바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다시 '개입주의'로 전환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이제 다시 전통적 고립주의로 돌아가면서 '개입주의'를 폐기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들이 적정한 주둔 비용을 내지 않으면 철군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미국의 이익을 최대한 우선하겠다는 생각을 공공연히 드러내 온 바 있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는 이번 예산안에서 국무부의 대외원조 기금과 유엔 평화유지 활동에 들어가는 예산을 대폭 축소하는 대신 국방부의 군비증강 예산을 대대적으로 늘렸다.

이 같은 기류에 대해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은 내심 상당한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아직 드러내놓고 거론하지는 못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첫 재량 예산안이 의회 심의를 그대로 통과할지 촉각을 바짝 세우고 있다. 앞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안보 정책을 가늠할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의 동맹국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이 '셧다운'까지 거론하며 강력 저지에 나선 가운데, 여당인 공화당 내에서조차 외교안보 예산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목소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은 18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국무부) 예산 삭감에 대해 매우 우려한다"고 말했다.

공화당 중진 린지 그레이엄(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은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예산안은 오자마자 폐기될 것이고, 통과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국무부 예산안을 삭감한 부분에 대해 "아마도 상원을 통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내 외교안보 전문가들도 이 같은 트럼프 정부의 고립주의 회귀 움직임에 대해 깊은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차관을 지낸 니컬러스 번스 하버드대 교수는 트위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국무부와 대외원조 예산 삭감은 미국을 약하게 하고, 외교를 불구로 만들 것이다. 충격적"이라고 적었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의 레이먼드 오펜하이저 미국 대표는 "이 예산안은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을 협량하고 옹졸한 것으로 재인식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온라인메체 '복스'는 이번 예산안을 "기본 외교정책과의 근본적 단절", "'미국 우선'이 아닌 '오직 미국'"등으로 규정하며 비판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중부군 사령관이던 2013년 의회에서 국무부의 대외 원조가 미국 국방에 도움이 된다고 했던 발언도 트럼프 정부의 대외원조 예산 삭감을 비판하는 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매티스 장관은 당시 의원들에게 "당신들이 국무부 예산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다면 나는 결과적으로 탄약을 더 사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