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전선 여럿 발견 … 경찰, 원인 가능성 정밀조사
거듭된 화재 '정비 소홀' 지적 "무허가 좌판 걷어내야"
▲ 19일 오전 인천 남동구 소래포구어시장 화재현장에서 상인들이 불탄 점포를 바라보고 있다. /이상훈 기자 photohecho@incheonilbo.com
18일 새벽 소래포구 재래어시장을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가운데 소방당국과 경찰이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아직까지 명확한 화재원인이 나오진 않았으나, 좌판에서 처음 연기가 피어오른 사실이 폐쇄회로화면(CCTV)을 통해 확인됐다. 밀집해 있던 좌판들은 가연성 소재인 비닐천막으로 둘러싸여 있어 화재에 무방비였다.


▲"가 구역 좌판에서 연기 올라"

경찰과 소방당국은 18일과 19일 이틀에 걸쳐 현장 감식에 나섰다. 경찰은 화재 피해지역 인근에 위치한 CCTV 60여대의 영상을 확보해 가~라 4개 구역 가운데 가 구역에서 가장 먼저 연기가 피어올랐다는 점을 확인했다. 경찰은 이곳을 최초 발화점으로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경찰은 가 구역에서 불길이 시작됐다는 목격자 진술도 확보한 상태다.

현장 감식에서는 전기 문제로 인한 화재 가능성을 조사하기 위해 지면에 묻혀있던 전선을 파내 확보했고, 철근 구조물에 얽혀있는 전선에도 특이한 점이 없는지 확인했다. 현장 감식에서는 전선이 끊어진 흔적이 여러 곳 확인됐으나, 화재와의 연관성은 추가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확한 발화지점과 화재원인은 아직 특정되지 않고 있다. 경찰은 확보한 증거들을 바탕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감정과 CCTV 추가분석을 진행할 예정이다. 일부 상인들은 변압기를 화재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전기로 인한 화재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현장에서 수거할 수 있는 증거는 전부 수거한 상태"라며 "정말감정 결과가 나오려면 2주 정도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건물 좌판 화재 키웠나

이번에 화재 피해를 입은 좌판들은 스프링클러와 같은 소방 설비를 갖추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가건물이라 소방 설비를 갖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화재 초기 대응을 위한 소화기함과 소화전이 설치돼 있지만, 아무도 없는 새벽시간 화재에는 무용지물이었다.

철골 구조물 위에 얹힌 비닐천막들은 화재를 키운 원인 중 하나였다. 좌판이 워낙 붙어있는데다, 가연성 소재로 덮여 있다 보니 불이 붙으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수밖에 없었다.

소래포구 정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0년과 2013년 소래포구에서 발생한 화재로 20~30개의 좌판을 태운 사건이 있었는데도 근본적으로 정비하기보다 가건물을 다시 세워 복구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는 현대화 사업을 통해 무허가 좌판을 걷어내고 합법적인 어시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있다.

장석현 남동구청장은 "국정이 혼란스럽다보니 소래포구가 국가예비어항으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라며 "국가어항으로 지정되고 현대화 사업이 이뤄졌다면 어느 정도 정비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영·김신영 기자 erhist@incheonilbo.com





화재보험 못 들어 … 보상도 어려울 듯

정부·시·남동구 '융자금·세금 납부유예' 혜택만


소래포구 재래어시장 화재로 인한 피해보상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좌판 대부분이 무허가 가건물인 탓에 화재보험을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지원금이나 재난안전기금과 같은 공공기관 복구 기금도 화재 잔해 철거나 안전진단 등 제한된 용도에만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19일 인천시와 남동구에 따르면 소래포구 구 어시장 일대 좌판들은 모두 건축허가를 받지 못한 건물이었다. 철근과 비닐천막으로 이뤄진 가건물이라 허가를 받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보험사들은 화재보험 가입을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과 2013년 화재 당시에도 상인회가 기금을 이용해 복구비용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무허가 좌판은 수십 년간 이어진 현안이기도 하다. 수십 년에 걸쳐 포구 일대에 젓갈 판매상과 수산물 상인들이 하나 둘 모이면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시장이라 공공기관도 쉽게 개입하기 어려웠다. 땅도 정부가 소유한 국유지이다. 상인들은 땅을 빌리는 차원에서 한국자산관리공사와 계약을 맺고 매년 100만원 수준의 임대료를 내고 영업해 왔다.

공공기관도 직접적인 복구비용을 지원하진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지원하는 특별교부세나 재난 안전 기금과 같은 돈은 모두 법에 따라 용도가 정해져 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시행령에 따르면 재난관리기금은 공공분야 재난 예방활동, 공공기관 소유 시설의 보수·보강, 예보 및 경보체계, 구조능력 확충사업, 감염병 혹은 가축전염병 확산 방지 대응, 재난의 원인 분석 및 피해경감 조사·연구 등에만 쓰도록 돼 있다.
다만 정부와 인천시, 남동구 등 관계 기관의 정책에 따라 전통·재래시장에 지원하는 각종 융자금이나 세금 납부 유예 등의 혜택은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상인들은 공공기관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한 상인은 "아무리 무허가 좌판이지만 너무하다. 남동구에 소방시설을 설치해 달라고 요구했는데 대책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다른 상인은 "허가를 받고 장사할 수 없어서 화재보험을 못 들어 둔 상태"라고 토로했다.

/박진영·김신영 기자 erhist@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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