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용 한국외대 중국연구소초빙연구원
중국은 평민 출신이었던 유방(劉邦)이 한(漢)나라를 세웠고, 명(明)나라를 건국한 주원장(朱元璋) 역시 평민 출신으로 어린 시절 전염병이 돌아 가족을 잃고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절에 들어가 구걸하는 승려가 됐다가 당시 민란을 주도했던 홍건적에 뛰어들어 새 왕조를 열고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지금의 중국을 건국했다고 할 수 있는 모택동 역시 사회주의 농민혁명을 통해 주석에 올랐던 만큼 역사적으로 중국에서는 백성들의 결집된 역량으로 왕조가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경우가 많았다. 본디 중국은 영토가 너른 대륙이다 보니 이민족의 침략도 많았고,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된데다 많은 수의 인구를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하나의 왕조가 긴 수명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고대 중국의 정치사상은 보수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여기기 쉽지만, 의로운 역성혁명이나 백성들의 봉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가 많다. '탕무방벌(湯武放伐)'이라 해 하(夏)나라의 폭군 걸왕(桀王)을 내치고 은(殷)나라를 세운 탕왕(湯王)이나 은나라의 폭군 주왕(紂王)을 쳐서 주(周)나라를 세운 무왕(武王)의 역성혁명을 맹자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순자(荀子) 역시 그의 책 <왕제(王制)>편에서 '임금은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물은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고 한 것처럼, 백성들을 잘 살피라는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국왕은 백성들에 의해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도 민심이 곧 천심이라는 말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는데, 천심을 저버린 군주가 백성들에 의해 쫓겨나는 일이 없었던 것은 어째서일까? 우리 백성들은 못된 군주를 그저 참고 바라만 보고 있을 만큼 온순하기만 했던 것일까? 하기는 우리에게도 1960년 학생들이 중심이 돼 부정선거 무효를 주장하며 자유당의 장기집권을 종식시키고, 제2공화국을 출범시킨 전례가 있으니 이를 혁명이라고 일컫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 민주당 정부는 곧바로 5·16 군사정변으로 무산돼 버리고 말았으니 4·19는 실패한 혁명으로 마감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다음 대통령은 지난 정부의 야당 출신 후보가 될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몇몇 후보는 마치 본선에서 대결하는 양 불꽃 튀는 대결과 견제를 벌이고 있다. 요즘 나는 괜스레 80년 민주의 봄이라고 해서 한창 들떠 있던 때가 문득 떠오르곤 한다. 그때도 그랬던 것처럼 혹시라도 저러다가 저들 후보들이 분열돼 예상치 못한 후보가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얻는 양상이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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