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대 열정·저력 통찰 '한국대중문화예술사' … 대중문화와 정치·사회 상관성 파악
▲ <한국대중문화예술사> 김정섭 한울 296쪽, 3만원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어느 날 갑자기 뚝딱 하고 나타난 음악일까. 대중문화와 정치·사회는 어떤 상관성이 있을까.

새책 <한국대중문화예술사>(한울·296쪽)는 우리나라의 문화시대를 꽃피운 열정과 저력을 통찰하는 책이다.
조선 말 대중문화의 태동기부터 오늘날 한류의 전성기까지 이 책은 부침의 시대와 함께하며 경계를 넘어 발전해온 한국 대중문화예술을 입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1938년, 1954년, 1994년 우리나라는 정치적 상황만 있었던 게 아니다. 시대마다 흥얼거린 노랫말이 있었고 입소문을 타는 소설이 읽혀졌으며 유행하던 패션이 있었다.

<한국대중문화예술사>는 대중문화예술의 여러 장르를 중심에 놓고 한국의 근현대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저자 김정섭은 일제의 통치가 막바지로 치닫던 1938년 발표된 '오빠는 풍각쟁이야'의 노랫말에서 '오빠'가 당시 신랑감으로 인기가 높았던 명동 샐러리맨이자 중산층 이상의 남성이라고 유추한다.

한국전쟁 이후 1954년부터 연재되어 돌풍을 일으킨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에선 카사노바 박인수 사건 등에 대한 관심과 맞물려 자유와 욕망을 점차 중시하게 된 시대 분위기를 읽어낸다. 1994년 배우 이정재와 신은경 주연의 영화 '젊은 남자'에서는 당시 사회적 주목을 받았던 '오렌지족'과 '야타족'의 세태를 들여다본다. 근대화 시기부터 최근까지를 아울러 방대한 정보로 가득한 이 책은 '옛날'에도 우리처럼 아름다움과 재미를 추구하며 울고 웃던 사람들이 살아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책은 정치적·사회적 배경을 포함한 시대의 전체적 흐름 속에서 대중문화의 역사를 파악하고 있다. 각 장에 덧붙인 시대별 '정치·사회 미리보기'와 '대중문화예술 연표'에도 공을 들인 이유다.

나운규가 제작해 1926년 개봉한 영화 '아리랑'은 광복을 염원하는 정서가 강렬하게 표현된 작품이며, 조용필의 '오빠부대'는 1981년 컬러 TV 방송이 시작되면서 가수와 팬의 거리가 좁아진 시기에 형성되었다는 점을 읽어낸다. 시나리오 검열 폐지가 1987년 민주항쟁의 여파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2000년대에 대중문화가 전반적으로 전성기를 맞은 배경엔 주5일 근무제 실시가 있었다는 점 등 정치·사회는 문화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최근 국정 농단이 불거지며 수면 위로 떠오른 '문화계 블랙리스트' 또한 격동의 근현대사 속에서 전개된 표현의 자유와 그에 대한 통제·억압 간 오랜 줄다리기의 연장선이라는 점, 그러한 줄다리기가 이제는 상업화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문화사가 포함된 한국 근현대사는 입체적인 역사 읽기를 자극한다.

저자는 또한 싸이 '강남스타일'의 성공 이유를 음악의 힘에서만 찾지 않는다. 저자는 미디어의 발달로 비롯된 교류 방식의 변화 속에서 그의 랩과 댄스에 나타난 'B급 정서'가 절묘하게 이식과 재창조를 거쳤왔기에 이런 음악이 나왔다고 주장한다. 모방 속에서 끊임없이 재창조를 시도했고 시대적 상황에 예민한 안테나를 세우며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일상에 녹아들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유연성은 케이컬처 이전에 문화의 본능이기도 하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한류를 넘어 케이컬처가 된 것은 이러한 본능에 충실했기 때문이며, 앞으로도 세계인들과 소통하는 문화로 남는 방법 역시 문화의 본능적 유연성이 안정적으로 발휘되도록 제도와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정섭 지음, 3만원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