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 정치2부 차장
▲ 이상우 정치2부 차장
지난 수 개월 간 '비선'이니 '농단'이니 '적폐'니 하는 낯선 용어들이 각 언론의 지면을 도배했다. 박근혜 정부의 난맥상을 상징하는 용어들이다. 정확한 뜻이 무엇이든 간에 이 용어들은 국정 운영이 잘못되고 있다는 뜻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분노한 국민들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대통령의 파면을 요구했고, 헌법재판소는 지난 10일 합법적 절차에 따라 대통령을 파면했다. 역사상 초유의 사태다. '비선실세들의 국정농단이라는 적폐'에 칼을 댄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같은 결과를 '사필귀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치권도 헌재의 결정을 수용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대국민 담화에서 "이번 탄핵 사태는 대통령 개인과 측근의 문제를 넘어 한국정치가 안고 있는 여러 복합적인 문제의 결과물"이라며 "우리 정치가 탄핵됐다는 심정으로 정치개혁에 매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 의장은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체제 문제, 허약한 정당정치, 당리당략을 앞세운 비타협주의와 승자독식 등 정치권이 묵인해 온 제도와 관습이 적폐를 키우는 온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과연 이같은 적폐가 정치권에만 있을까?. 비선(秘線)은 사전적으로 '몰래 어떤 인물이나 단체와 관계를 맺고 있음. 또는 그런 관계'를 뜻한다. 조직도에는 없지만 '보이지 않는 선'으로 존재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나 세력을 비유한다. 농단(壟斷)은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함'을 뜻한다. <맹자> 공손추(公孫丑)에 '어떤 사람이 시장에서 높은 곳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고 물건을 사 모았다가 비싸게 팔아 상업상의 이익을 독점했다'는 일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학연이나 지연으로 얽힌 비선, 지위나 직무를 이용해 정보를 독점하는 농단은 이미 우리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 심지어 이런 적폐가 능력이나 수완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한 국가의 정치 수준은 그 국민의 눈높이라는 말이 있다.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이같은 적폐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국민이 끌어내리는 불행한 역사는 반복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