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지만/ 젊은 시절에도 나는 젊지 않았어/ 때때로 날은 흐리고/ 저녁이면 쓸쓸한 어둠뿐이었지/ 짐 실은 소처럼 숨을 헐떡였어/ 그 무게의 이름이 삶이라는 것을 알 뿐/ (중략) /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지만/ 젊은 시절에도 늘 펄펄 끓는 슬픔이 있었어/ 슬픔을 발로 차며 거리를 쏘다녔어/ 그 푸르고 싱싱한 순간을/ 함부로 돌멩이처럼' - 문정희 시인의 시 <기억>

지난 주말, 우연히 인천의 극장들을 다큐멘터리로 찍고 있다는 감독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인천에는 정말 많은 극장들이 있었다. 애관, 미림, 문화, 오성극장 등. 어떤 소설가는 고등학교 때 이성과 몰래 극장에 갔다가 '금연'이란 글자를 보고 '흡연금지'가 아니라 '연애금지'로 오인해 잔뜩 긴장했다지만, 필자의 가정 형편은 그럴 꿈도 꾸지 못하게 했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영화 '벤허'를 단체 관람했다. 첫 영화를 광대한 스케일의 영화와 맞닥뜨렸으니 영화에 대한 놀라움, 감동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다. 궁핍이 원인이었겠지만 나도 시인처럼 '젊은 시절 늘 펄펄 끓는 슬픔'을 발로 차며 거리를 쏘다녔다.

몇 년 전 동구노인문화센터에서 어르신들 글쓰기 봉사를 하다가 미림극장이 추억의 미림극장으로 재탄생해 어르신들이 싼 값에 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는 걸 알게 됐다. 지나가면서 보니 외관도 출입구도 거의 그대로였다. 복합상영관 틈에서 살아남아, 추억의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니 놀랍고 반가웠다.
개발에 대해 생각을 한다. 위정자의 잘못된 역사, 문화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많은 것을 훼손하고 파괴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낡았다고, 가치가 없다고 파괴하는 것에 얼마나 많은 이의 소중한 삶이, 추억이 자리 잡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역사와 문화의 큰 줄기 아래로 누군가는 '함부로 돌멩이처럼' 쏘다녔지만 푸르고 싱싱한 삶의 순간이 있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번 주 미림극장에서는 '백야의 탈출'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상영한다. 영화를 보며 추억의 한 자락을 꺼내보면 봄이 더 환하게 올 듯하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