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추운 겨울을 당한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뒤에 시드는 것을 안다.) -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중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해외한국학자료센터 팀이 조선시대 대표적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의 미공개 친필 서첩 등 조선 후기 문헌과 서화 400여 종, 수천 점을 일본 교토대 서고에서 발견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추사가 함경도 북청에서 유배 생활을 한 뒤 경기도 과천에서 은거하던 말년에 자신의 시 '석노가'(石노歌)와 '영백설조'(詠百舌鳥)를 행서로 쓴 친필 서첩인 '노설첩'(노舌帖), 성종 12년(1481)에 편찬된 조선조의 대표적인 인문지리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희귀본, 다산 정약용의 '경세유표'(經世遺表) 새 판본 등 고문헌과 서화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귀한 자료들이 수천 점이나 일본의 한 대학 서고에서 세월을 뒤집어쓰고 있었다니, 절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많은 보물들이 한 대학에서 쏟아져 나온 것을 보면, 얼마나 더 많은 보물들이 일제치하에 일본으로 넘어갔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렇게 찾아낸 귀한 자료를 연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로 가져올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우리나라의 많은 문화재들이 약탈이나 또는 유출의 형태로 확인된 것만 해도 일본이 약 3만5000점, 미국에는 1만6000여점, 영국 6600여점, 독일 5000여점, 러시아 3000여점, 프랑스에 1000여점이나 있다고 한다. 그 중에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 왕오천축국전, 몽유도원도, 수월관음도도 포함돼 있다. 이러한 우리의 문화재를 당당하게 반환을 요구할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올 수 있는 것인지 다시 국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정희의 세한도는 유배돼 있는 자신에게 끝까지 의리를 지킨 역관 이상적에게 보내는 그림과 글이다. 세한도는 필묵만으로, 가운데 간결한 집 한 채와 좌우 두 그루의 나무 가운데 특히, 소나무의 가지가 세월과 추위를 이기듯 강고하게 서 있다. 한 겨울에 잎은 졌지만 고고히 서 있는 소나무의 품격. 지금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게 아닐까.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