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5월20일 분리 독립 성향의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의 취임식이 거행됐다. 이날 진행된 행사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2·28사건을 묘사한 공연이었다. 대만은 우리 못지않게 복잡한 근·현대사를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청나라에 귀속돼 있었지만 실제 청의 지배력은 거의 미치지 않았고, 청·일전쟁(1894년 6월∼1895년 4월) 이후부터는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일본이 패전하자 장제스의 국민당 군이 대만에 진주하면서 본토에서 넘어온 외성인(外省人)들과 대만의 본성인(本省人)들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사소한 계기로 대규모 시위가 시작되자 장제스는 본토에서 전투 중이던 국민당 군까지 동원해 이들을 무력으로 진압했고, 최대 4만 명으로 추산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것이 이른바 2·28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1988년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에 의해 정부 차원의 조사가 진행되기 전까지 누구도 입에 담을 수 없는 금기였다. 정부 차원의 조사가 있었고 기념공원까지 조성됐지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만의 급진 독립파들에게 장제스는 단순한 독재자가 아니라 아마 이민족의 침략자로 보일 것이다. 올해는 대만에서 2·28사건이 벌어진지 만 70년이다. 지금까지 대만의 역사인 줄로만 알았던 2·28사건에 대해 중국 정부가 나서서 다양한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 사건이 중국공산당과 무관한 국민당이 일으킨 사건인데다 대만의 공산당원들이 이 사건에 개입했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애도를 표하며 큰 의미에서는 "중국 인민 해방투쟁의 한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겉보기에는 중국 정부가 대만에서 발생했던 비극적 사건을 함께 애도하는 보기 좋은 장면이지만, 다르게 보면 하나의 중국을 추구하는 본토 정부와 독립을 추구하는 대만 정부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두고 주도권을 다투는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독립을 희망하는 본성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동안 대만 독립의 근거로 제시되던 상징적인 사건마저도 하나의 중국을 위한 역사로 가져가려는 꼴로 비춰질 것이다. /황해문화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