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진개문화마당 황금가지 대표
네덜란드 출신 지휘자 겸 바이올린 연주자인 앙드레 리우의 공연을 보면, 자신이 이끌고 있는 요한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 단원은 물론 본인 또한 공연 내내 행복한 미소가 걸려있다. 아니, 행복해 죽는다. 오죽하면 공연 중에 넉살스레 단원들끼리 장난을 치거나, 술을 마시는 시늉을 해 관객을 웃기는 등 파격적 행위를 마다치 않는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벨기에 브뤼셀 왕립음악원을 수석 졸업했고 저명한 지휘자 아버지를 둔 그로서는 파격행보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오케스트라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더욱 아니어서 관객을 울고 웃게도 만들어 감동 넘치는 자신의 음악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겸했다는 평이 늘 따라 다닌다.

일일이 소개할 수 없지만 이들이 연주 여행을 떠난 도시와 국가는 턱없이 비싼 입장료를 지불해야만, 이런 모종의 행복을 만끽한다는 비판이 있음에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이들에게 구애를 멈추지 않고 있다. 멋 나게 생긴 외모에 6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은 물론 심금을 울리는 대표적 악기 바이올린을 기막히게 켜댐으로서 요한 슈트라우스의 화신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면 그에 대한 호평은 일이관지(一以貫之)이다.
그러나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다른 구성원을 편들어 칭찬하는 것이 또 다른 구성원에게 독이 되는 경우를 종종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서는 호불호를 예각처럼 드러내지 않고 중용을 지키듯 거대한 관계의 물줄기를 타고 유유히 함께 흘러가야 한다는 말이 떠도는 것이다. 아무튼 앙드레 리우를 떠올리면 한 사람의 재능이 네덜란드의 국격을 높이고 자신의 고향 마스스트리트의 위상을 높임은 물론 경쟁력을 갖춘 도시를 만드는데 이바지했다는 칭찬이 늘 뒤따른다. 하여, 암스테르담 인근의 고요한 마스강가에 위치한 천년 고도 마스스트리트는 사람의 세수로 치면, 겨우 예순일곱 살의 앙드레 리우로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TV 시청할 시간도 없고 워낙에 허구를 현실처럼 도배한 드라마에 관심이 없다보니, 요즘 배다리를 중심으로 원도심을 배경으로 방영한 <도깨비>가 법석을 부린다는 말을 듣게 됐다.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드라마 배경장소를 바탕화면에 놓고 자신이 주인공인 양 연신 셔터를 누르며 웃음 짓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후문이다.
순간, 세간에 화제가 됐던 <실미도> 상영에 맞물려 영화 촬영지 깜짝 방문 열기를 떠올렸다. 깜짝 광풍에 대한 우여곡절을 필설로 다 할 수 없지만, 인기라는 것의 '냄비 속성'은 가치의 희석과 퇴색의 고리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진즉에 학습해 왔던 터. 여하튼 인천을 배경으로 한 <창수> <고양이를 부탁해> <약속> <파이란> <시월애> <신세계> <차이나타운> <써니> <도가니> <기술자들> <회사원> <박쥐> <마더> <인천상륙작전> 등 많은 영화가 인천을 배경으로 제작됐다는 것을 이제 낯설어 하지 않는다. 그 만큼 인천이 문화의 다양성과 양극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공간임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도시는 살기 좋고, 꿈을 쫓을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바라는 시민의 희망이 농축된 공간이다. 역설하면 시민이 만들어가야 할 공간이란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시민 다수의 선택적 결과물인 지자체 단체장을 뽑아 놓기만 하면, 자세가 역전돼 되레 굽실거리고 스스로 종노릇을 자처하듯 비굴한 모습을 보인다. 반면 단체장들은 군주가 된 양 뽑아준 시민과 적당 선을 긋고 제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불통행정을 작동시키며 제 울타리 안에 주어진 권력을 무소불위로 휘두른다. 그래서 합법적 조폭이란 말이 나왔는지 모른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종교계, 교육계, 산업현장 등 이른바 집단을 이루는 곳은 죄다 권력과 굴종의 사슬관계를 스스로 옭아매고 있으니, 소시민은 도시를 지옥에 빗대거나 불행의 진원지로 보는 견해가 허다했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려 공동체에 합류했건만 공동체로부터 속박당하는 우울한 현실 앞에 인천사람은 그저 쓸쓸하고 고독한 시민이란 이정표를 역사에 남길까 심히 두려운 것이다. '한 사람은 만인을 위해, 만인은 한 사람을 위하여'라는 알렉산더 뒤마의 소설 <삼총사>의 구호처럼 그런 흥이 절로 나는 목소리 한번 듣고 싶은 요즘이기 때문이다.

앙드레 리우를 빗대어 네덜란드 마스스트리트 마을의 전언과 인천을 견줄 바는 아니다. 게다가 인천이 현대 영화산업의 새로운 근간으로 자리 잡아 명소로 부각된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삶의 질적 상승과 기대 효과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표피적인 즐거움에 연연해서도, 일부 정치인과 지도자에 기대서도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그 때가 불현듯 찾아와서다. 도시의 주인이 시민인 것처럼 인천시민에 의해 <희망=봄> 등식이 여지없이 작동해야 하는, 바로 그 때가 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