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와 당구에 푹 빠져 살던 '철없는 청년'은 30년 뒤 연수구의원으로 4선 고지에 오른다. 정지열(56·선학·연수1·2·3·청학동·사진) 의원은 연수구의 역사와 함께 원숙한 의원으로 커져 있었다.

"1993년인가, 처음 연수구가 생겨날 때 들어왔어요. 예전에는 길도 하나 제대로 없었지요. 비만 오면 땅은 질퍽했고요. 그런데 어디 내놔도 지지 않을 정도로 이제 번듯하게 변했어요."


▲우표 모으고 당구 치던 청년 … 첫 직장생활 시작하다

그가 인천에 온건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경기도 안성에서 지내다가 교육자인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인천으로 거처를 옮겼다. 동산고등학교에서의 3년은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다. 훗날 정치 진출의 발판이 됐기 때문이다.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친구와 잘 어울렸어요. 우취부(우표 동아리)에서 활동했고요. 돈만 생기면 우표를 샀고 전국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79학번으로 한양대 공과대학에 입학한 그는 이른바 '청년생활'에 흠뻑 빠져 살았다. 특히 당구를 많이 즐겼다. 프로를 꿈꿨지만 이루진 못했다. 당구에 대한 나쁜 이미지가 컸기 때문이다. 그는 "그때는 철이 없었다"라며 웃었다. 그는 결국 부모님의 뜻대로 직업을 얻는다. 자동차 부품 제작업체 동신공작소(현 ㈜동보)에 기술 영업직으로 일했다고 한다.

"9년 정도 일했어요. 인생은 사람과의 대화와 협상이 필요한 영업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호의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대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안거죠."


▲연수구와 함께 시작한 정치인생

정치인생은 1995년 시작됐다. 연수구가 남구에서 분리돼 초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기 직전이었다. 정 의원은 서한샘 전 의원을 도와 비서관으로 일했다. 동산고 동창회가 그를 서 전 의원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한 덕분이었다. 서 의원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자연스럽게 비서관 생활을 했지요. 서 의원님은 16대 선거에서 떨어지셔요. 저는 그동안의 정치 경험을 바탕으로 2002년에 구의원에 도전하죠."

첫 구의원 생활은 낯설기만 했다. 기계공학을 전공하다보니 행정용어가 생소했기 때문이다. 그는 1년 정도 공부했다고 한다. 당시 기획관리실장이었던 이홍범 현 연수구 부구청장이 정 의원의 '스승'이었다.


▲"후세를 위해 미래 준비"

그는 구정에 비판적이었다. 특히 최근 시설관리공단 설립 정책을 강하게 질책했다.

"시설관리공단의 운영 실패 사례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인건비가 엄청나게 들어갈 게 뻔합니다. 100억원 가까이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도시 관리비가 더 커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유는 더 없을 겁니다."
그는 반대로 보육과 청년 실업, 교육에 투자할 것을 강조한다.

"미래의 아이들이 왕성하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청년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반대로 고령화 시대에 맞춘 효정치에도 역점을 둬야겠지요. 앞으로도 내 동네를 따뜻하게 만든다는 신념을 가지고 정치에 임할 생각입니다."

/박진영 기자 erhist@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