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경제연구소장
통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세계적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대한민국 국민들만큼 많은 경우가 달리 있을 것 같지 않다. 우리는 모여 앉으면 당초 어떤 이유로 모이게 된 것이냐에 상관없이 서슴없이 정치얘기에 빠져든다. 그래서 광장은 온갖 정치적인 집회로 편안할 날이 없고 SNS 또한 갖가지 정치 이야기와 루머로 차고 넘친다. 일면 생각하자면 모든 국민이 정치에 지극한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일일 수도 있다.

국민들이 자신들의 삶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고, 국민들의 자유가 대단히 신장돼 있고 합의와 공존의 지혜가 성숙해가고 있는 과정일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공선을 위한 사회적인 감시는 강화될 것이고 이러한 정치적인 관심의 고도화는 필연적으로 공정하고 맑은 사회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상식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생겨난다. 우리가 둘러앉아서 나누는 정치 이야기의 내용이 무엇이냐 라는 것인데…, 과연 우리들은 모여 앉아서 쉴 새 없이 어떤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들은 대체로 합리와 순리, 균형과 절제, 양보와 합의, 현재에 대한 성찰과 대안의 모색, 공익에 대한 탐구…, 그런 것들일까? 물론 물으나마나한 이야기를 묻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 이야기들의 속은 패거리와 이기주의, 위선과 독선, 편견과 고집, 흥분과 무절제, 우격다짐과 선동, 빈정거림과 무책임, 권력에의 집착과 가학, 패배와 피해에 대한 강박, 심지어 단세포적인 흥미와 악의적인 장난 따위들로 대체로 채워져 있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해도 나의 양심에 별다른 거리낌이 남지도 않는다.

물론 가끔은, 진심으로 나라 걱정, 사회 걱정으로 터져 나오는 쓰린 번민의 한숨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그들의 목소리는 작고 무기력하다. 요컨대 이 사회에 정치는 차고 넘치지만 그것은 파괴적일지언정 공동선의 창조와 상관이 없다. 우리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이 있을 수 있다. 나라 규모에 걸맞지 않게 너무도 많은 TV채널이 주범일 것도 같고 국민들을 끊임없이 선동하고 자극하는 쪽으로만 정보를 조작하는 매체들의 집단적인 상업주의의 농단이 그 탓일 수도 있다. 지나치게 정치를 닮아가는 무늬뿐인 시민운동에게도 그 책임의 일단이 있을 수 있고, 바람직한 민주시민과 양심적인 지식인 집단의 생산에 실패한 교육의 결과일 수도 있다.

그리고 아마도 그 모든 것의 밑바닥에는, 우리 모두가 빠져서 도저히 벗어나지 못하는 지역과 패거리주의의 깊은 수렁, 그 가엾은 이기주의의 어리석음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런 속에 인천에서 또 하나 정치 과잉의 사례가 아닌가 싶은 걱정스런 사건이 이목을 끈다.

광역시의 기초자치에 대해서는 많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지적돼 왔다. 필요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부터 중앙정당에 의한 공천의 당위성에 이르기까지 사례도 다양하다.
개발이익이나 대형 이벤트를 둘러싼 기초자치단체장들의 편협한 지역이기주의는 광역지방자치의 장애요인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급기야 한 기초자치단체가 일부 행정협조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문제를 앞세워 시장의 지역 순시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지면 등을 통해 수 차례, 지방자치에 있어 지방자치법의 준수를 강조해왔거니와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법은 자치단체별 행정의 권한이 미치는 범위와 위계에 대해 이 법 제9조(지방자치단체의 사무범위)와 제10조(지방자치단체의 종류별 사무배분기준)에서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인천시장의 행정의 권한은 인천시 전역에 미치는 것이고 그의 정당한 관할구역 내 주민과의 접촉은 누구라도 방해할 수 없다.

예의 자치단체장의 행위가 정치적으로 자신을 부각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진 행위인지에 대해서는 단정할 수 없겠지만 이 법에 근거해 결과만으로 판단한다면 튀는 정치적인 행보가 아니라고 보기 어렵다.
설사 인천시의 행정이 지극히 부당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런 문제는 당연히 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 해결했어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이 시청 앞 마당에 멍석을 깔고 시위를 하고 자치단체장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길바닥으로 나선다면 이 나라의 법령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민원은 모두 시위와 농성으로 풀어갈 것인가. 과잉한 정치가 나라와 사회를 삼켜버리려는 이 시점에 합리와 준법의 모범을 보여야 할 자치단체의 지도자들이 시중의 혼돈을 닮아가야 하는가. 거듭 강조하지만 정치가 과잉하면 행정이 무너지고 행정이 무너지면 시민이 살기 어렵다. 정치는 가치를 선택하는 과정이고 행정은 그 선택을 실현하는 수단이면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