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으로 유쾌한 일탈 보여주고 싶어"
지난해 12월 인천시립극단 7대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강량원(54·사진) 연출가는 오는 4월 첫 연극을 앞두고 무척이나 바쁜 나날 보내고 있다. 단원과 나란히 들어선 그의 첫인상은 누가 감독이고, 배우인지 모를 정도로 푸근하고도 강렬했다. 짧은 머리에 제멋대로 희끗하게 자란 머리카락, 까칠해보이는 턱수염 …. 선부드러운 인상이지만 강단 있는 말투와 목소리엔 연극에 대한 열정이 짙게 배어 있었다.

올해 처음 선보이는 연극은 배삼식 작가의 '열하일기 만보'다. <열하일기>는 조선후기의 실학자 연암 박지원 선생이 한성에서 압록강을 건너 베이징, 열하까지 3000리길을 6개월에 걸쳐 여행한 기록이다. 극은 마을 '열하'에서 말(馬) 한 마리가 인간의 말(言)을 하는 소동으로 시작한다. 말(馬)은 다름 아닌 전생에 '열하일기'를 썼던 연암의 환생. 말(馬)은 주민들을 모아놓고 <열하일기>에 기록된 바깥 세상에 대해 얘기한다. 고립된 채 살던 주민들은 마을 밖 세상을 꿈꾸기 시작한다. 그러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독특한 것을 모으는 어사가 마을에 찾아와 같은 요구를 하고, 실의에 빠진 주민들은 결국 어사에게 말(馬)을 내어주고 만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과 미래를 꿈꾸게 해준 '독특한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강 감독은 "삶 속에서 탈주로를 찾는 게 진정한 일탈이라고 생각한다"며 "관객에게 삶의 굴레에서 달아나는 방법을 유쾌하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연세대 신학과를 나와 모스크바 쉬킨 연극대학교에서 연극연출을 전공했다. 극단 '동(動)'의 창단 대표이기도 한 그는 젊은 시절 인천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을 떠올리며 웃어보였다. 그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1989년부터 2년간 인천 자유공원 아래 3층 건물을 빌려 '청복'이라는 극단을 만들어 활동했다. 인천민예총이 주관한 연기 워크숍을 통해 인천의 배우들과 공부하며 함께 작품을 올리기도 했다. 인천에서 열린 '제1회 함세덕 연극제'에서 해연(海燕)을 연출한 경험도 있다.

2008년 대한민국연극대상 무대예술상, 2009 동아연극상 새개념 연극상, 2008 PAF 연출상, 2009·2013년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선정하는 '연극 베스트 3' 등에 이름을 올린 그는 늘 실험적인 연출로 주목받았다. 낯설다는 목소리도 거세지만 이에 굴하지 않는 '오뚜기 정신'의 소유자다.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하면 처음엔 아프지만 결국엔 익숙해져 건강에 유익해지잖아요. 낯선 연극도 인간의 삶과 정신을 더 다양하고 풍요롭게 한다고 자부해요."

이런 그가 단원에게 늘 강조하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몸짓과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라는 것이다. 그는 "대사도 그 의미를 전달하기 전에 관객들이 배우 각자의 개성을 느낄 수 있도록 음성이 먼저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배우라는 타이틀을 떼고 시민과 '연극'을 통해 허물없이 소통하길 바라는 감독의 마음이었다.

올 한해 그가 연출할 공연 장르는 다양하다. 여름엔 배우들이 직접 연출부터 제작까지 맡아 그들의 예술세계를 볼 수 있는 '배우 연극열전', 가을엔 '청소년극'과 '극장 밖 연극', '음악극', 겨울엔 2014년 개봉했던 영화 '해무'를 희곡으로 각색해 선보일 예정이다.

"인천은 참 다이내믹하고 재밌는 도시에요. 내년엔 인천을 주제로 연극을 기획해 시민들의 공감대를 얻어 단원들과 극장에의 문턱을 없애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열하일기만보'는 오는 4월7일부터 16일까지 인천문예회관 소공연장에서 볼 수 있다. 또 시민들이 <열하일기>에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다음달 11일 극단 연습실에서 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이 진행하는 '열하일기, 천의 고원을 가로지르는 유쾌한 노마드' 강연도 준비했다. 032-438-7775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