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승연 경기가족여성연구원 박사
유리천장(glass-ceiling)이라는 용어가 있다. 유리천장은 미국의 경제전문일간지인 월스트리트저널에서 1970년대에 최초로 만들어서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개념으로, 성차별이나 인종차별 등의 이유로 충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고위직을 맡지 못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제시한 용어다. 쉽게 말해, 유리천장은 투명해서 마치 올라갈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올라갈 수 없는 장벽이 존재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유리천장은 우리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지만 실제로 증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실존에 대한 논란이 돼왔다. 그러나 유리천장은 현재에도 다양한 단위에서 존재하고 있고 아이러니하게도 지속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제시된다.

최근 여성공무원 수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현재 수준 정도의 인원이라면 충분하다거나 적어도 적지 않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러나 실제 중요 업무나 상위직급에는 아직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승진 시 후순위로 밀리는 것이 당연시 된다는 것이다. 민간기업에서는 점차 경력이 쌓이면서 중요한 업무나 직책을 맡게 될 즈음에 여성은 결혼과 출산·육아 등으로 퇴직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에서 이러한 업무공백을 부담스러워 하면서 아예 업무배치나 승진에서 배제되는 현상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과연 정말 그럴까?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는 매년 3월에 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10개 하위지표를 설정해 유리천장지수(Glass-ceiling Index)를 발표하고 있다. 2016년 3월 발표에서 우리나라는 29개 OECD국가들 중 최하위를 차지했다. 1위 국가인 아이슬란드와는 3배 이상의 점수 차이가 있고 OECD 평균인 56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5점을 받았다.

우리나라와 함께 20점대를 받은 국가는 일본(28.8점)과 터키(27.2점) 뿐이다. 2016년에 발표한 자료의 제목이 'The best-and worst-places to be a working woman'임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 직장은 여성들이 일하기에는 최악의 일터인 셈이다.

세부항목을 들여다봤을 때, 우리나라는 성별 임금격차와 여성 관리자비율에서 큰 점수 차이를 보였고 성별 경제활동참가율 차이도 하위권에 속한다. 성별 임금격차는 OECD 평균이 15.5%p인데 우리나라는 36.7%p이고, 여성 관리자비율도 11.0%로 OECD평균 30.8%와 큰 차이를 보인다. 성별 경제활동참가율 차이 역시 OECD 평균은 16.9%p인데 터키가 43.0%p로 평균을 낮추는데 큰 기여를 할 정도로 이상치(outlier)임을 감안했을 때, 터키 다음으로 큰 성별 차이를 보인 우리나라의 21.6%p는 OECD 국가들에 비해 매우 큰 것임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적어도 우리나라에 유리천장의 존재를 의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 많은 사회 영역에서 양성평등 실현을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하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깨뜨려야 할 유리천장은 아직까지도 너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 남성 아이돌그룹이 발표한 노래 가사에 유리천장이 사용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널 가두는 유리천장 따윈 부숴'라는 가사가 현실에서 유리천장에 갇혀 괴로워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불쾌감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적 이슈를 부각시키는데 대중가수만큼 파급력이 큰 존재는 없다.

더욱이 청소년들에게 압도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아이돌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러기에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 남성 아이돌그룹은 유리천장이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고 사용한 것이 아니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유리천장의 어원과 현재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충분히 알고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아! 아직 유리천장에 대해 모르는구나'였다. 핵심을 비껴갔기 때문이다. 유리천장은 스스로 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리천장은 우리사회가 만들어 놓은 곳이고 사회인식과 조직문화가 변화해야만 깨지는 것이다. 절대로 유리천장에 갇혀 있는 당사자가 깰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리천장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미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마치 하나의 사회문화로 여겨지는 현상이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인정하는 것조차 쉽지 않고 깨뜨리는 것은 더욱 어렵다. 우리 사회가 유리천장의 존재를 인정하고 인지할 때 비로소 유리천장을 깨뜨릴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관심을 가지고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그렇다면 대중 파급력이 큰 아이돌그룹의 노래 가사에 유리천장이 언급됐다는 것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겠다. 작은 관심부터 시작해야 한다. 곧 발표될 2017년 우리나라의 유리천장지수에 아직은 큰 기대가 없다. 하지만 조만간 작지만 큰 변화의 물결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