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자주 생각한다. 발화의 의도라는 게 생각보다 많은 경우에 변명을 위한 변명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실제 의미 전달에 있어서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물론 발화의 의도를 '알고' 있는 건 대화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대개 '의도'를 이야기할 때에는 "아, 그렇게 느꼈구나. 그런데 그건 내 의도가 아닌데?"로 끝나는 경우이지 않은가 싶다. 그렇다보니 이렇게 얘기하게 된다. "그래서 애초의 의도가 지금 뭐가 중요한데?"라고.

아마 '의도'를 설명하면서 곤혹스러운 순간을 떠올린다면 아마 농담에 대한 의도를 설명할 때가 아닐까? 농담은 그 의도를 설명하는 순간 재미도 없어지지만 그걸 설명해야만 하는 분위기가 될 때는 보통 적당한 농담이 아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러한 '불편한 농담'은 아마 애초에 '농담'으로 삼기에 적당한 사안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가령 결혼을 앞둔 사람에게 "혹시 혼수를 미리 준비한 건 아니겠지?"라는 식의 '농담'을 하곤 한다. 한번은 이런 농담의 자리에 나도 있었는데 처음에 이해가 안 갔다. 그 다음에 나온 당사자의 반응이 "임신은 아니다"였기에 더욱 의아했고, 지인에게 "혹시 '혼수'라는 단어가 내가 알고 있는 단어 외의 다른 의미가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저 농담은 확실히 혼전임신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결혼 전에 준비(?)되는 것의 의미로 (임신을) '혼수'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관계의 가까움을 떠나서 결혼이나 자녀 계획은 밥 먹었냐는 정도의 가벼움으로 물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게다가 결혼을 축하한다는 의미에서 그런 농담을 했을지라도 듣는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반응은 "그래서 어쩌라고?" 정도가 아닐까 싶다. 정말 그래서 어쩌라고, 이다. 그런 의도라서 어쩌라고? 그건 여전히 유효한 불편한 농담이다.

해설하는 순간 농담은 실패다. 게다가 웃기지도 않고 불쾌해서 반드시 해설이 필요한 경우라면 더욱 망한 농담이다. 이제는 위트있는 농담, 최소한 덜 망한 농담을 듣고 싶다. #불쾌 #망한 #농담 #의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