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수 문학박사·동산중 교사
▲ 해방 이후 인천항 일대 전경, 출처:인천직할시, <사진으로 본 인천개항 100년>, 인천직할시사편찬위원회, 1983.
1883년 인천의 개항 이후 1940년대와 1950년대의 달라진 이곳 정경은, 박인환과 조병화의 시작품들에 잘 반영돼 있는 것을 볼 수 있어 주목된다. 먼저 <신조선> 1947년 4월호에는, '세월이 가면'과 '목마와 숙녀' 등의 시로 널리 알려진 시인 박인환(朴寅煥, 1926~1956)의 시 '인천항'이 수록돼 있어 관심을 끈다.

'사진잡지에서 본 향항 야경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중일전쟁 때/ 상해부두를 슬퍼했다// 서울에서 삼천 킬로를 떨어진 곳에/ 모든 해안선과 공통되어 있는/ 인천항이 있다// 가난한 조선의 프로필을/ 여실히 표현한 인천항구에는/ 상관도 없고/ 영사관도 없다// 따뜻한 황해의 바람이/ 생활의 도움이 되고저/ 냅킨 같은 만내로 뛰어들었다// 해외에서 동포들이 고국을 찾아들 때/ 그들이 처음 상륙한 곳이/ 인천항구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은주와 아편과 호콩이 밀선에 실려오고/ 태평양을 건너 무역풍을 탄 칠면조가/ 인천항으로 나침을 돌렸다// 서울에서 모여든 모리배는/ 중국서 온 헐벗은 동포의 보따리같이/ 화폐의 큰 뭉치를 등지고/ 황혼의 부두를 방황했다// 밤이 가까울수록/ 성조기가 퍼덕이는 숙사와/ 주둔소의 네온싸인은 붉고/ 짠그의 불빛은 푸르며/ 마치 유니온 작크가 날리든/ 식민지 향항의 야경을 닮어간다// 조선의 해항 인천의 부두가/ 중일전쟁 때 일본이 지배했던/ 상해의 밤을 소리없이 닮어간다.' - '인천항' 전문

위의 시에는 광복 이후 분단이 가시화되기 직전 우리나라의 암울한 분위기가 상징적이면서도 꾸밈없이 표현돼 있어 주목된다. 이는 특히 이 시의 '밤이 가까울수록/ 성조기가 퍼덕이는 숙사와/ 주둔소의 네온싸인은 붉고/ 짠그의 불빛은 푸르며/ 마치 유니온 작크가 날리든/ 식민지 향항의 야경을 닮어간다// 조선의 해항 인천의 부두가/ 중일전쟁 때 일본이 지배했던/ 상해의 밤을 소리없이 닮어간다'라는 구절에 단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인천항에 진주한 미군의 성조기를 보고 시인은, 식민지 향항(香港, 홍콩)의 서글픈 운명을 떠올려 보면서, 앞으로 우리조국에 닥쳐올 분단체제의 불행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편운(片雲) 조병화(趙炳華, 1921~2003)의 제21시집 '어머니'(중앙출판공사, 1973)에 는 시 '서울 인천을 두고'가 수록돼 있는데 여기서는 6·25 한국전쟁의 상황에서 시인이 어머니를 남겨 두고 떠난 곳으로 인천부두가 표현돼 있어 주목된다.

'서울 인천을 두고 마지막 피난지/ 부산으로/ 부산으로 도망가지 아니할 수 없었던 때/ 처량한 일이었읍니다/ 마지막 같았던 일들// 당신은 바람 찬 인천 부두/ 아우성 속에서/ 저희들 먼저 떠내보내시며/ 괜찮다, 괜찮다/ 먼저 어서/ 어서/ 눈물 글썽/ 까만 조바위 흰 두루마기로/ 그 모습/ 그 말씀// 어서, 손 흔드시며 어서/ 늙은 것은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십이월 마지막 불어 닥치던/ 찬바람/ 바닷바람// 이거 사람의 자식으로/ 차마/ 아, 세월아/ 소월미도 돌아, 돌아다 보아도/ 까만 조바위 하얀 두루마기/ 외로운 갈매기/ 어머니 홀로// 군산 앞 바다를 지나도/ 밤을 새워도/ 목포를 멀리 돌아도/ 다도해를 지나도// 외로운 갈매기/ 어머니 홀로/ 하얀 두루마기 까만 조바위/ 아, 당신을 홀로 적진에 두고/ 이 불효/ 슬픈 일이었읍니다.' - '서울 인천을 두고' 전문

시 제목에도 암시돼 있는 바와 같이, 6·25 때 인천부두는 마지막 피난지 부산으로 배가 출발하던 장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원하는 사람들이 모두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의 어머니가 아들 가족을 먼저 떠나보내심은, 이러한 당시 상황을 반영해서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이 시에서 이곳은 이별의 장소로서 의미도 지니게 됨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떠난다고 잊히겠는가? 특히 어머니가 종교적 의미까지 지니게 되는 시인에게 있어서는 더욱 잊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에서는 잊히지 않는 홀로 계실 어머니의 모습이, 인천을 떠나 군산과 목포를 돌아 다도해를 지날 때까지도 따라오는 외로운 갈매기에 빗대어 표현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와 같이 1940년대와 195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쓰인, 박인환의 '인천항'과 조병화의 '서울 인천을 두고' 등 두 편의 시에서는, 일제 강점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이하지만 다시 분단으로 이어지는 당시의 비극적 현실 상황이 작품에 잘 반영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 그때로부터 7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의 시대 상황은 어떠한가? 그 당시와 여러 측면에서 달라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들이 또한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작품들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의미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