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회사·오락장·여관 … 이 자리에 머물다 갔구나
▲ 중구청 뒷길 송학동 1가 9번지 '호텔 에티'가 있는 자리는 개항기 영국계 무역상사인 '홈링거양행'이 있던 곳이다.
▲ 홈링거양행 전경. 이 건물은 벽돌조 2층 건물로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이 설계했다.
▲ '유림파크'와 '청아장'이란 여관이 있던 1991년 송학동 1가 9번지 전경.
▲ 인천시역사자료관 .
러시아 건축가가 설계한 영국계 상사 건물 '홈링거양행 인천지점' 1896년 문 열어
90년 초 건물 재건축.현재 '호텔 에티' 영업 … 인근 한옥 '인천역사자료관' 시대적 편린 간직


꽃샘추위인가. 흰눈이 녹아 촉촉한 비로 내리는 '우수'가 지났건만, 자유공원의 바람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새해 첫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중순…. 봄 역시 금세 찾아올 것이다.

중구청을 지나 자유공원으로 방향을 잡는다.

HOTEL ATTI. 중구청 뒷길 견고한 3층 건물의 상호가 겨울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난다. 최상의시설, 최상의서비스. 입구에 설치된 네온사인은 주마등처럼 글자를 흘려보내며 어서 들어오라고 유혹한다. 호텔을 바라보는데 눈앞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로 알려진 '대불호텔'이 스쳐 지나간다.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중구는 대불호텔을 재현하는 공사를 진행 중이다.

호텔 에티가 들어선 송학동 1가 9번지엔 '홈링거양행 인천지점'이란 벽돌조 2층 건물이 있었다. 1896년 10월에 문을 열어 1898년 8월 송학동으로 이전한 상업시설이다. 1층은 반복아치로 2층은 페디먼트로 장식한 영국계 상사건물이던 홈링거양행은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이 설계한 건물이다.

손장원 재능대 교수는 "지붕은 우진각지붕이고 박공지붕이 돌출되어 출구와 중심성을 강조하는 건물"이라며 "러시아 인천영사관 정면, 제물포구락부 등에도 사용된 페디먼트는 사바찐이 즐겨 사용하던 방식"이라고 저서 <인천근대건축>에서 밝히고 있다.

홈링거양행은 일본 나가사키에 본점을 둔 제조품 수입 회사였다. 인천과 부산, 중국의 마관, 대련에 지점을 운영했는데, 영업부·선박부·은행부·보험부의 4개 부서로 나눠 영업을 했다. 인천지점은 홍콩상하이은행, 노청은행, 러시아 기선회사의 대리점 업무를 수행했다. 영업부는 구미 각국의 제조품을 직수입 했으며, 선박부는 피오회사·퍼시픽메일기선회사·옥시덴탈 앤드 오리엔탈 기선회사를 비롯해 영·미·프의 대기선회사 10곳의 대리점 업무를 보았다. 생명보험회사, 화재보험회사, 해상보험회사의 대리점 업무는 보험부가, 홍콩상하이은행의 대리점업무는 은행부가 각각 관장한다.

이 건물은 1900년 서양인들을 대상으로 한 오락장으로 이용됐다. 1933년엔 '고토 렌페이'(後藤連平)란 일본인이 '조선매일신문사'를 차려 사무실 겸 주택으로 썼으며, 이후 '조선알미늄공업주식회사' 사옥으로 바뀐다. 광복 후에는 주한미국대사관 공보원 인천분원이, 1951년엔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인천지부 회관 건물로 각각 사용한다. 1953년 3월12일 해군수로국이 설치되며 청사로 사용했으나 1963년 10월 10일 해군수로국이 폐지되며 교통부 수로국으로 바뀐다. 이후 건물을 헐어 테니스코트장을 만들었으며 90년 초엔 '유림파크'와 '청아장'이란 여관이 들어서기도 했다.

호텔 에티와 붙어 있는 '담쟁이넝쿨'은 '돌솥비빔밥'으로 유명한 식당이다. 도라지, 고사리 등 갖가지 나물을 얹어 고추장과 참기름을 듬뿍 넣어 비벼먹는 맛이 그만이다. 여기에 전, 콩탕수육, 오징어무침, 잡채, 양배추쌈 등 웰빙음식들이 식욕을 더욱 돋군다. 고풍스런 한옥의 실내분위기는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호텔 에티에서 남부교육지원청 정문을 지나 U자형으로 휘어진 비탈길을 오르면 왼편으로 제물포구락부, 오른편으로 인천역사자료관이 나온다. 고즈넉한 모습으로 응봉산 중턱에 앉아 있는 이 멋진 한옥은 개항장 인천의 시대적 편린을 잘 간직한 곳이다. 초록빛 풀과 아름드리 나무가 있는 정원의 역사자료관은 1900년 쯤 일본인 사업가 '코노'(河野竹之助)의 저택이었다. 광복 후엔 동양장이라는 서구식 레스토랑으로, 송학장이라는 사교클럽으로 사람들을 만났다.

인천시장 공관이 된 때는 1965년이다. 인천시는 당시 이 곳을 매입해 한옥을 지은 뒤 1966년부터 시장 공관으로 사용한다.

강옥엽 인천시사편찬위 전문위원은 "개축공사의 계획은 12대 윤갑로 시장때였지만, 부임한 것은 13대 신충선 시장이었다. 그러나 신충선 시장은 두 달여 만에 순직함으로써 본격적인 공관시대는 14대 김해두 시장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며 "인천항이 내려다 보이는 수려한 경관과 정원으로 이름이 나 있는 이 공관을 거쳐간 역대 시장은 최기선 시장까지 모두 17명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이곳은 인천시역사자료관으로 변신, 강덕우 강옥엽 두 박사가 인천 시사 자료의 체계적 정리와 대중화를 통해 인천역사의 정체성을 규명하고 있다. 역사지식의 보고와 편안한 휴식처로, 인천역사자료관은 인천시민들이 즐겨찾는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글 김진국 기자·사진 유재형 사진가 freebird@incheonilbo.com